종합

뇌수종 앓으면서도 30여 년째 미사 반주하는 이재순씨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2-02-15 수정일 2022-02-15 발행일 2022-02-20 제 3282호 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장애인으로 살게 하신 하느님 뜻… 봉사하며 깨달았어요”
휠체어·지팡이 의지하며 어떤 상황에도 빠지지 않아
승강기 사용 중지됐을 땐 힘겹게 계단 오르면서 봉사

미사 반주를 마치고 오르간 앞에 앉아 활짝 웃는 이재순씨. 그에게 미사 반주는 하느님께서 주신 큰 은총이자 살아가는 이유다.

7살 때부터 뇌수종을 앓아온 이재순(막달레나·55·수원교구 이천본당)씨는 오른쪽 뇌에 튜브를 삽입했다. 원인 미상의 하반신 마비 증상도 겪고 있다. 이 증상은 지난 2004년 눈의 통증을 막으려 진행한 튜브 삽입 2차 수술 후 발생했다. 전혀 움직이지 못하다가 필사의 재활 훈련으로 지금은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지해 조금씩 움직인다. 더 이상 치료를 할 순 없어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할 뿐이다.

이씨는 이런 몸으로 매 주일 오전 8시와 금요일 오전 10시 본당 미사 때면 오르간 반주를 위해 꼬박꼬박 성당에 모습을 드러낸다. 휠체어를 타기 전인 1990년 즈음에 시작해 수술과 입원 시기를 제외하고 30여 년째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피아노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그가 ‘성가로 하느님을 만나고 음악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릴 적 성장발육이 멈췄던 그는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성인이 될 때까지 병원에 다녔다. 어느 날 왼쪽 눈이 너무 아파 뇌 검사를 받고는 병명을 알았다. 너무 오래 방치해 뇌 한쪽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영향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처럼 일상생활 중 일어난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루 전 어떤 일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시간 틈날 때마다 메모를 하며 기억을 붙잡는다. 다행히도 성가는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성가 번호까지 다 외웠다. 그러면서 이씨는 “더 잘할 수 있는데 자꾸 잊어버린다”고 말한다.

오르간으로 미사 반주를 하고 있는 이재순씨.

미사 반주는 하느님께서 주신 큰 은총이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하는 이씨. 그만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반주를 맡은 날은 늘 제대 옆 오르간을 지킨다. 한번 외출하려면 준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휠체어로 거리에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성당 엘리베이터 사용이 중지됐을 때는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1층 로비에 휠체어를 두고 한 발짝 한 발짝 어렵사리 계단을 오르는 일을 견뎌내야 했다. 한 본당 신자는 “날씨가 궂을 땐 다니시기 위험할 것 같아 ‘나오지 마시라’고 청할 정도인데, 미사 반주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항상 그 자리에 있다”며 그의 열성과 꾸준함을 칭찬했다.

이씨는 장애도 ‘하느님께서 당신을 더 가깝게 느끼도록 주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남들처럼 건강했으면 봉사는 생각도 안 했을 거예요. 처음에는 원망도 많이 했지만, 점차 장애인으로 살게 하신 하느님의 뜻을 찾게 됐습니다.”

자신의 반주 소리를 하느님께서 만족해하시고 신자들이 좋아해 주기를 늘 기도한다는 이씨는 “힘이 들어도 신자들이 ‘성가 반주가 너무 좋았다’고 인사할 때 보람을 느끼고 하느님이 주신 좋은 몫에 감사하게 된다”고 밝혔다.

‘봉사’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느님을 위해 나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찬바람을 맞으며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이니 그 탈렌트를 되돌려 드려야 한다고 되새깁니다. 그만두지 못하는 것 또한 하느님의 힘 덕분입니다.”

이씨는 “빠른 시간 내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서 마스크를 벗고 성가를 크게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이 제일 큰 소망”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베풀어 주시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바란다면 욕심이기 때문이라면서.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