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꿀잠’을 지켜야 하는 이유 / 박지순 기자

박지순 시몬 기자
입력일 2022-02-08 수정일 2022-02-08 발행일 2022-02-13 제 328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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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꿀잠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꿀잠은 부당하게 직장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마땅한 거처가 없을 때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거리에 텐트를 치고 또는 굴뚝에 올라가 복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김이 나는 밥과 국을 날라 주는 곳이기도 하다.

허름한 가정집이 빼곡한 골목길을 한참 물어물어 가서야 꿀잠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기자 역시 2017년 설립 초기부터 꿀잠을 취재했지만 초행길에 꿀잠을 바로 찾기는 꽤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꿀잠 건물을 실제로 접했을 때 ‘사람 사는 정’이 물씬 풍겼다.

지난해 후반부터 꿀잠이 철거 위기에 놓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 2구역 재개발조합이 2020년 3월에 설립 인가를 받은 후 재개발 계획 변경을 거듭하며 현재는 3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를 짓는 행정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꿀잠 이사장 조현철(프란치스코) 신부를 비롯해 꿀잠 설립에 힘을 보탰거나 꿀잠을 이용해 온 이들 50여 명이 2월 7일 오전 영등포구청 앞에서 매서운 추위도 아랑곳없이 꿀잠 존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꿀잠의 역사와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기자 역시 기자회견 참석자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조현철 신부가 기자회견에서 울분을 터뜨리듯 한 말이 있다. “우리 사회 재개발은 켜켜이 쌓인 지역의 역사, 공동체 안의 따스한 삶들, 사회 공공재에 대한 무차별한 삭제를 자행해 왔다.” 한국사회 곳곳에서 지역 재개발을 둘러싸고 이미 겪었던 아픔들이 신길동 꿀잠에서는 재연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박지순 시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