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해외 원조 주일 특집]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심화된 불평등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2-01-25 수정일 2022-01-25 발행일 2022-01-30 제 3280호 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1%만 배부르고 나머지 점점 더 가난… 관심과 나눔이 답이다

인구 99%의 소득 감소하고
상위 10% 세계 자산 76% 차지
시장의 절대적 자율성 대신
불평등 구조 없애는 노력 필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한 노숙자가 2020년 4월 문을 닫은 상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팬데믹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시기, 레바논 주민의 절반 이상이 빈곤으로 신음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 불평등은 사람을 죽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했다. 소득과 기회에 대한 불평등은 더 없이 불공정하고 불건전하며 불행한 사회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대학 경제학과 자야티 고쉬 교수는 백신 제조 기술을 공유해 더 많은 지역에서 백신을 생산하고 분배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억만장자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자산을 축적해 더 큰 부자가 됐고, 일부 대기업은 유례없는 수익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팬데믹의 재난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그리고 불평등의 현실은 단지 부자들이 수익을 더 많이 내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 많이 양산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 팬데믹으로 심화된 불평등

국제구호기구 옥스팜(Oxfam)은 1월 17일 팬데믹 이후 전 세계 소득 불평등을 분석한 보고서 ‘죽음을 부르는 불평등’(Inequality Kills)을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 말까지 세계 인구 99%의 소득이 줄고 1억6000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빈곤과 의료 혜택의 부재, 기후위기 등의 불평등으로 4초마다 1명, 하루에 최소 2만1300명이 죽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세계 10대 부자들의 자산은 7000억 달러(약 833조 원)에서 1조5000억 달러(약 1786조 원)로 2배 이상 늘었다. 하루에 무려 13억 달러(약 1조5000억 원)씩 늘어난 셈이다. 이들 10명의 자산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31억 명이 보유한 자산보다 6배 많다. 그리고 26시간마다 1명씩 새로운 억만장자가 탄생했다.

■ 10% 부자, 전 세계 부 76% 차지

이러한 수치는 다른 조사기관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프랑스 파리 경제대학 부속 연구기관인 ‘세계 불평등 연구소’(WIL, World Inequality Lab)는 지난해 12월 7일 ‘2022 세계 불평등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 이후 지난해까지 상위 1% 부자가 소득 하위 계층 50%보다 19배 많은 부를 축적했다. 상위 10%는 전체 소득의 52%를 차지했고, 하위 50%의 소득은 전체 소득의 8%에 불과했다. 보유 자산의 양극화는 더 극심하다. 상위 10% 부자가 전 세계 자산의 76%를 가진 반면, 하위 50%는 불과 2%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CNN비즈니스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세계 500대 부자의 자산이 1조 달러(약 1200조 원) 늘어났고, 팬데믹이 본격 시작된 2020년에도 500대 부자의 자산은 총 1조8000억 달러(약 2165조 원)가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세계은행(WB)에 따르면, 하루 1.9달러(약 2300원)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 빈곤 계층은 2020년에 9700만 명, 지난해에는 1억 명 증가했다. 세계은행은 지난 1월 11일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경제 회복 속도 차이로 인해 전 세계 국가 간 불평등은 팬데믹 이전보다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마스크를 쓴 엄마와 아이들이 보건소에서 비타민과 약을 타기 위해서 줄을 서 있다.

2020년 10월 멕시코 치우다드 후아레즈시에서 사람들이 무료급식소에서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불평등, 모든 악의 근원”

팬데믹 초기 인류는 ‘공통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생각했다. 국가나 민족, 성별, 사회적 계층과 무관하게 모든 이들이 똑같은 비극적 상황에 처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백신이 인류 공공재가 되리라던 기대는 처음부터 이기주의와 독점의 벽에 부딪혔다. 세계는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로 나뉘었고, 개발도상국의 코로나19 사망자 비율은 선진국의 2배에 달했다. 제약회사들은 사람들의 목숨을 거머쥐고 억만장자가 됐다.

교황 즉위 후 권고 「복음의 기쁨」을 내고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안 된다”고 설파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끊임없이 불평등과 경제적 소외의 구조적 악을 비판해왔다. 교황은 2015년 2월 7일 “부의 불평등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시장의 절대적 자율성과 금융 투기 등을 포기하고 부의 불평등 구조를 없애겠다는 결심을 먼저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팬데믹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던 2020년 8월 26일 수요 일반알현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불평등을 강조하고 악화시켰다”며 “이러한 불평등의 증상은 병든 경제가 퍼뜨린 바이러스에서 비롯됐다”고 개탄했다.

■ 불평등은 선택, 관심·나눔은 의무

교황은 이에 앞서 2020년 2월 5일 교황청 사회과학학술원 국제회의에서 “오늘날 부의 중심에서 극빈 현상이 지속해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역사상 가장 큰 빈곤층을 양산하도록 모두가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어 “모든 경제 불평등의 상황이 ‘무관심의 세계화’, ‘돈과 탐욕, 투기의 우상화’가 불러온 죄의 구조에서 비롯됐다”며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과 폭력을 심화할 수도, 사회경제 시스템을 인간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옥스팜과 세계 불평등 연구소 등은 팬데믹으로 심화된 전 세계 불평등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팬데믹 기간 중 자산이 급증한 부자들에 대한 증세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즉, 엄청난 부를 축적한 부자들에 대한 실제 세금을 올려서 확보되는 재원을 전 세계 보건, 의료, 교육, 기후위기 대응 등에 투입함으로써 불평등 현실로 인해 고통받는 취약 계층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방안들과 함께, 불평등한 세계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서 ‘형제애’에 바탕을 두는, 이웃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과 나눔의 정신을 강조한다. 이는 곧 가난한 이들 곁에 머물러 그들의 운명에 함께 했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 역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억압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웃들과 운명을 함께하려는 관심과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