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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떠날 줄 아는 용기 / 임현택 토마스 신부

임현택 토마스 신부,(재외국 유학)
입력일 2022-01-12 수정일 2022-01-12 발행일 2022-01-16 제 327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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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들은 있던 곳을 떠나는 것에 익숙하신가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기가 적응하고 머물던 곳을 떠나기는 보통 쉽지 않은 것으로 다가옵니다. 어렸을 적에도 아주 오랜 시간 살던 집에서 다른 지역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께 “난 안 갈 거야! 나 혼자 여기에서 살래!”라고 말하면서 떼썼던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저는 유독 떠나는 것을 더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잘 아시다시피 신부는 사목지에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인사이동을 하잖아요? 그렇게 자주 이동하게 되는 신부의 삶을 준비시키기 위해 신학교 1학년 때 방을 자주 바꾸게 했던 것 같아요. 학기 중반부에 다른 방으로 옮기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봤자 같은 동기들끼리 섞이는 것이라 큰 변화는 없으리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함께 사는 룸메이트가 바뀐다는 것부터 다시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환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떠남’, ‘이동’은 헤어짐의 아쉬움이 있고, ‘새로 함께하게 될 사람과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라는 기대감과 약간의 두려움도 섞이게 됩니다.

얼마 전 저에게 신부가 된 후 두 번째로 맞이하게 된 ‘떠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사이동’이었지요. 이번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고, 미안함도 남는 이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목적으로 신자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것들을 코로나19로 인해서 꽤 많이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성경 구절이 떠올랐어요.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6) 그러면서 동시에 ‘코로나’라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면서 허우적거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허우적거리다가 방역 수칙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을 즈음, 기다렸다는 듯이 사목적으로 나름대로 생각해왔던 것을 시도해봤습니다. 역시 신부는 신자와 함께 할 때 신부로서 존재 이유를 찾게 되더군요.(적어도 ‘교구사제’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그렇게 지낸지 얼마 안 돼서 이동을 하게 되니 아쉽고 미안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선배 신부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부임해있는 기간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한 것은 놓아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네가 본당을 떠나면 네 후임 신부가 나름대로 만들어가겠지.”

사실 저는 아직 초짜 신부라 “내가 있을 때 여기까지는 해놔야지!”라는 약간의 강박(?)감이 있었거든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의식이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기도 했던 것이지요. 떠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함을 이번에 새삼 느끼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겸손의 모습이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이겠죠?

임현택 토마스 신부,(재외국 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