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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묵주기도의 길 (용인의 산티아고 순례)

소병용(바오로·용인 삼가동본당)rn
입력일 2022-01-11 수정일 2022-01-11 발행일 2022-01-16 제 327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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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를 손에 쥐고 오늘도 걷는다. 운학 하천에는 오리들이 헤엄치며 평화로이 노닐고, 송사리와 피라미들은 은빛을 뿌리며 팔짝 뛰며 삶을 자랑한다. 들녘에는 야생화가 피어있고, 논에는 모심기가 끝나간다.

가는 길 한 시간, 오는 길 한 시간, 쉬엄쉬엄 걸으며 묵주기도를 드린다. 우리 내외는 그렇게 일주일에 두세 번 그 길을 걷는다. 암울한 코로나19로 인하여 미사에 참석할 수 없는 우울한 마음을 성모님께 드린다.

필리핀에 한 달간 봉사 다녀온 뒤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아내 바울라가 하루 만 보 걷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귀찮아 거절했더니, 묵주기도를 같이 드리자고 한다. 거절할 수 없어 시작한 그 길이 이젠 ‘용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되었다.

환희의 신비를 묵상하며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신 성모님의 믿음과 순명을 저에게도 전구해 주시도록 청하며, 성모님께서 기뻐하신 일과 마음 아파하시던 모습들이, 마음속에 다가온다.

빛의 신비를 바칠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가르쳐 주신 뜻을 생각하며, 먹고 마시며 보내던 시간을 이제 나의 힘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거룩한 성체를 모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도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 빛을 밝히며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해본다.

올여름, 장마철에는 비가 참 많이도 왔다. 비가 오기 때문에 아무도 없으니, 참 좋다. 이 자연 속에 둘만 그 길을 걸으며 성모송을 노래한다. 논에 심은 벼는 여기저기 쓰러져있다. 농부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연에 몸담은 모든 것들은 역경을 헤치며 순리에 따라 그렇게 살아간다. 사람들처럼 아등바등하지 않고 순리에 따른다. 그리고 날씨가 개면 스스로 일어난다.

벌써 추수가 끝났나 보다. 논에는 볏가리만 남아있다. 농부들의 순박한 삶이 고마울 뿐이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송구스럽다. 창조주 하느님께,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난한 이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며,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희생해 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제대로 전했던가? 누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져 보았던가?

들녘에는 흰 눈이 쌓여있다. 묵주기도의 길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미끄러운 그 길을 조심해 걷는다. 예전처럼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라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데…. 고통을 건너뛰는 영광은 없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영광의 신비로 이어지며, “부활한 예수를 찬미하면서 우리의 생활을 새롭게 하세 아베아베 아베마리아”로 두 팔을 높이 들고 찬미 드린다. 오늘의 삶, 이 기쁨(福音)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온 세상을 향하여 외치고 싶다.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자애로우신 우리 어머니 당신을 언제나 찬양하오며, 이 잠시 지나갈 세상 후에도 찬송하옵기를 원하나이다” (가톨릭성가 234번 ‘우리 자모’ 중)

용인의 운학천 길을 두고 걷는 ‘묵주의 길’을 자애로우신 어머니께 봉헌한다. 이 시간에도 밭에서, 장터에서, 출근길에서, 아기를 키우며 묵주기도를 바치는 그 장소를 기도하는 이들 각자는 공손히 봉헌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소병용(바오로·용인 삼가동본당)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