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2주일- 물이 포도주로 변하였는지 보라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입력일 2022-01-11 수정일 2022-01-14 발행일 2022-01-16 제 3278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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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단순한 마음으로 순종하면서
받은 은사를 공동선 위해 쓰면
하느님 주신 기적 체험할 수 있어

예전에 영신수련 이론을 짧게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 관한 것도 있었는데요.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에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물이 포도주로 변하였는지 보라’고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혼자 기도할 때 항아리 안에 들어있는 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던 적이 있는데요. 제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 필요한가 봅니다. 오늘 복음 내용을 보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느님께 받은 은사를 공동체를 위해 쓰는 겁니다. 독서에 보면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드러나 보이는 성령의 모습이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일 텐데요. 그 은사를 가지고 공동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그 너머의 일도 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그 은사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최근에 있었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최근에 선배 신부님과 새로 만드는 묵상집의 집필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읽어본 글들을 생각하면서 추천되어지는 분들이 있었는데요. 그중에 어떤 분을 두고는 제가 평소에 말해 본 적이 없어서 부탁드리기가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신부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김 신부가 잘하는 게 있잖아. 찾아가서 머리 긁적이는 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제가 자주 하는 행동이 있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에 찾아가서 머리를 긁적이는 겁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대림이나 사순시기 묵상집에 글을 써 주실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랬습니다. 단순히 찾아가서 머리를 긁적였는데요. 많은 분들이 응답해주셔서 작은 소책자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번만이 아닙니다. 예전에 중국에 있을 때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고 헤맸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먼저 중국에 나와 계신 여러 신부님 수녀님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전화하고 찾아가서 머리를 긁적였는데요. 대부분의 분들이 사시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고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지내고 살아갈지 감을 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도 그랬습니다. 첫 본당 신부를 하면서 공소를 지어야 했습니다.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건축금도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본당에 고구마와 편지를 들고 다녔고, 신부님이 계시면 찾아가서 머리를 긁적였는데요. 여러 신부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건축에 대해 알려주셔서, 공소 건축을 잘 마무리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데니스 칼베르트 ‘카나의 혼인잔치’ (1592년).

그러한 일들을 돌아보면서 ‘나에게는 찾아가서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은사인가’ 싶을 정도로, 그 일을 자주 반복했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찾아가고 머리를 긁적였을 때 그 너머에 신기한 일들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신부님 수녀님들이 글을 써주셔서 묵상집이 만들어졌고, 외국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었고, 공소가 지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성모님도 들어주실 수 있는 분 앞에 나아갑니다. 나아가서 신혼부부의 곤란한 상황을 말씀드립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우리와 예수님 사이를 중재하십니다. 이것이 성모님의 은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완곡하게 거절하시지만, 성모님께서는 더 강한 믿음을 표현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자 항아리에 담긴 물이 포도주가 되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됩니다.

다른 한 가지는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이 해 주실 것을 믿으며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은 단순한 마음으로 순종했을 때 보게 되는 그 너머의 일을 생각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기 3장에 보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르단강을 건너는 모습이 나옵니다. 어떻게 강을 건넜습니까? 여호수아가 하느님의 명령대로 계약 궤를 맨 사제들에게 강에 들어가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사제들이 순종의 첫걸음을 내딛자 마른 땅이 생겨나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사렙타의 과부도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을 달라는 엘리야의 말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이걸 주면 나는 굶어 죽을 텐데.’ 하면서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의 말대로 생명과도 같은 빵을 내어줍니다. 그러자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 시리아 사람 나아만도 요르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엘리사의 말을 들었는데요. 처음에는 엘리사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며 고쳐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집니다. 그리고 더 깨끗한 강도 있는데 왜 하필 요르단강이냐며 불만을 가지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해보라는 종의 말을 듣고, 요르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그자 몸이 깨끗해지게 됩니다.

이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순종하여 말씀에 따라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 그 너머에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모님도 그러한 믿음이 있었고, 일꾼들도 말씀에 따라 물독에 물을 담아 과방장에게 날라다 줍니다. 그러자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이렇게 복음의 내용을 보면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에 작용하였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내 삶에도 담겨 있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를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 또 그분의 말씀에 단순한 마음으로 순종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