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임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에게 듣는다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2-01-05 수정일 2022-01-05 발행일 2022-01-09 제 327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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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교회의 주인공… 서로에 대한 존중이 가장 중요”
“부족한 가운데 나누는 참된 행복, 교회가 삶으로 증거해야”
■ 교구 시노드 방향 
교회 구성원 모두가 주인공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 위한
스스로 돌아보는 성찰 필요

■ 청년·청소년 사목
아이들의 아픔과 꿈에 동반
세대 특징에 맞는 접근 강조
‘찾아가는 사목’ 활성화 고민

■ 교회의 나눔 
풍족해서 나누는 것이 아닌
부족해도 나누는 문화 통해
사회에 복음적 메시지 전해야

정순택 대주교는 “시노드 정신에 따라 교회 구성원 모두가 하느님을 향해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 박원희 기자

과학자를 꿈꾸다 갑자기 성소를 깨달아 사제가 된 대주교. 몽당연필로 메모하며 몸소 검소하게 살아가는 대주교.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을 느낀 뒤로 하느님께 ‘올인’한 대주교…. 어느 한 수식어로 신임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는 온전히 하느님을 향해 열려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교구장과 함께 새 여정을 시작한 서울대교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서울대교구장 임명 뒤 처음으로 교계 언론과 인터뷰 자리를 마련한 정 대주교를 만나 그가 앞으로 그려갈 서울대교구의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

◎ 서울대교구장이 되면 뭔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일상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착좌 후 대주교님 일상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스케줄이 많아졌습니다. 새로운 직무를 맡고 나서 하루하루 일정이 많아졌지요. 벌써 밀려드는 서류가 많아 책상에 한가득 쌓여있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결재자가 되다 보니, 교구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사안에 따라서는 결재 전 관련된 부분을 신부님들께 여쭤보고 하는데,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착좌 후 며칠은 기도할 시간도 많이 줄어들 정도로 여유가 없었는데요, 이제 다시금 하루 안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 지난해 12월 8일 착좌 미사 후 답사에서 “하느님께는 지금 감사의 마음을 올리지는 못해도 언젠가 달릴 길을 다 달리고 나서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를 올리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큰 책임감을 느끼셨을 지 가늠이 돼 더 많은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대주교님을 위해 기도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날 미사 끝에 답사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하느님께 기쁘게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감정에 온전히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가르멜 수도회에서도 8년 전 교구 보좌주교 임명됐을 때는 기쁘다, 영광스럽다는 반응이었는데요, 이번엔 아무래도 맡게 된 직무를 무거운 십자가로 여기고 더욱더 함께 기도해주시고자 하시는 분위기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참 감사드립니다.

◎ 과학자를 꿈꾸던 대주교님께서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신 뒤 다시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해 사제가 되셨고 보좌주교를 거쳐 이번에는 수도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인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셨습니다. 대주교님의 삶은 어떻게 보면 참 극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마다 주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삶의 유일한 반전은 성소를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였고 감사하고 충만한 삶이 시작됐습니다. 어릴 때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어서 성소의 꿈을 키워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중 대구에서 열린 포콜라레 마리아폴리에 참석했는데, 거기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은 다 다르게 다가온다”는 말을 듣게 됐어요. 그 때 처음으로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려고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한 부제님과의 대화에서 그동안 제가 갖고 있던 신앙의 의문점이 풀렸다고 할까요? 그때 제가 “저는 너무 똑똑해서 단순해질 수 없는데, 저와 같은 사람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느냐?”는 질문을 도발적으로 드렸습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저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한마디로 기고만장했을 때였죠.(웃음)

부제님은 구들장에 비유를 해주셨어요. 어떤 구들장은 쉽게 데워지고 어떤 구들장은 늦게 데워지는데 각자의 장단점과 역할이 있다고요. 잘 안 데워지는 구들장은 한 번 데워지고 나면 식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둘 다 사랑하신다고 하셨어요. 이 대답을 듣는 순간 하느님께서 저를 온전히 사랑하신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때부터 모든 걸 바쳐야겠다고 생각했죠.

이후에는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명하는 삶이었어요. 8년 전 수도회에서 교구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것도 그렇고 교구장 임명도 저로서는 너무도 놀라운 소식이었지만, 모두 그저 순명하며 하느님의 뜻으로 삼고 따르는 길의 연속이라 여깁니다.

◎ 현재 한국교회는 세계주교시노드 교구 단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세계주교시노드는 하느님 백성 전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조금 특별하게 진행되는데요, 서울대교구의 시노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계획이신지요.

이번 세계주교시노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포인트는 예전과는 좀 다릅니다. 단지 교구나 교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점을 찾아가는 회의 차원이 아니라 온 교회 하느님 백성 모두가 함께 걸어가며 우리는 교회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인공으로서 시노드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 가운데 성령의 음성을 듣고 공동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한 미션을 찾아나가자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신자들은 신자대로, 수도자들은 수도자대로, 사제들은 사제대로 각자 오늘날의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서로 “이렇게 고쳐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도록 초대받은 것이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가 주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찾고, 교회와 사회를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고민하면서 희망의 빛을 느끼게 되리라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청이 중요하고, 잘 경청하기 위해서는 상호존중이 제일 중요합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경청을 위한 아주 중요한 자세죠.

◎ 대주교님의 서울대교구장 임명 이후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영적 성장에 대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착좌미사 강론에서도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깊게 만드는 영성적인 노력을 하시겠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이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요.

우선 사랑을 체험해야합니다. 그 사랑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일수도 있고 형제자매나 가족, 부부, 애인이나 친구 간의 사랑일 수도 있어요.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죠. 비유하자면, ‘달이 일천강에 비친다’는 말이 있는데요. 달은 하나지만 모든 강마다 달빛을 품고 있듯이 영성적으로 깊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형태의 사랑에서 그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 형태의 사랑 안에서 기도와 말씀, 성체성사를 통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손길을 보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더욱 깊이 만날 수 있어요.

정순택 대주교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어려움을 다 듣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분임을 기억하며, 새해라는 선물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 대주교님께서 2014년 2월부터 최근까지 교구 청소년담당 교구장 대리를 지내시며 청년들 눈높이에서 함께 호흡하셨다는 일화가 참 많습니다. 교구장 사목교서 설명회를 통해서는 청년을 위한 투자, 파격적인 지원도 언급해 주셨는데요. 앞으로 교구장으로서 청년 사목을 어떻게 펼쳐 나가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청년·청소년 사목에서는 ‘교회가 그들의 아픔과 꿈에 어떻게 동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이게 숙제입니다. 교회가 앞으로 힘을 모아야 할 포인트는 청소년·청년 사목이 교회의 정말 중요한 몫이라는 점이지요.

일단 청소년·청년들의 특징에 맞는 사목이 이뤄져야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관심 있는 분야에 따라 모임을 형성하기도 하고 온라인에서 활발히 소통하는 이동성(mobility)을 지닌 세대입니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각 본당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활동하면서도 그때그때 이벤트성이든 다양한 관심사에 따라 본당을 넘나드는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향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찾아가는 사목’이 중요합니다. 우리 교구는 ‘가톨릭 아웃리치’라고 해서 학교 밖 청소년 분과를 설립하고, 아지트(A지T, 아이를 지키는 트럭) 버스를 운영하는 등 찾아가는 사목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죠. 다양한 모습의 찾아가는 사목에 대해 연구하고 찾아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외국의 교구와 교류 등을 통해 젊은이들이 해외봉사를 체험하는 나눔의 장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긴밀해지는 요즘 젊은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체험을 쌓고, 해외 젊은이들도 한국교회와 사회를 체험하는 교류 프로그램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당장은 어렵겠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를 만들어 가며 청년들이 봉사 안에서 느껴지는 소중한 신앙을 체험하길 바랍니다.

◎ 대주교님께서는 교구장 착좌미사에서 사제들에게 사제의 정체성을 이 시대의 요청 안에서 새롭게 성찰하자고 당부하셨습니다. 특별히 교구장으로서 사제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신부님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교회와 세상을 위해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드리는 것, 신부님들의 사목적 열정을 세상을 향해 쏟아낼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교구의 숙제입니다. 우리 교구에는 1000명에 이르는 훌륭한 사제단이 있습니다. 이 정도 인적 자원은 전 세계 교구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반면 본당은 232곳에 불과해 균형이 맞지 않죠. 그래서 17~18년은 지나야 본당 주임 사제로 발령받을 수 있습니다. 젊고 에너지 넘치는 40대 신부님들이 주임 사제 발령을 기다리면서 지칠 수 있죠.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교구는 그동안 인적으로, 물적으로 또 국내외적으로 많은 나눔을 실천해왔습니다. 이러한 나눔 활동에 대한 어떤 철학이나 고민이 있으신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눔을 확대해나가고 싶으신지 계획이 궁금합니다.

나눔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실 풍족해서 나눈다기보다 부족한 가운데 함께 나누는 몫입니다. 교회가 부족한 가운데 아끼면서 나누는 문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나눔은 멈춰서는 안 되죠. 그동안 교구는 사회사목국 산하 기관만이 아니라, 타교구나 다른 나라 교회들을 위해 알려지지 않은 채로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또 재정적인 나눔만이 아니라 선교사제나 평신도 선교사, 수도자 파견 등 인적 나눔도 우리 교회가 세상 안에서 나눔의 중요성을 증거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교회의 나눔이 우리 사회 안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지만, 교구나 공동체는 선행을 널리 알려야 사회에 자극도 되고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부족한 가운데 나누는 것, 이것이 결국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증언이 될 거 같기도 하고요.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홍보도 필요한 부분이겠지요.

현대 자본주의의 단면 중 풍족하게 누리는 것을 SNS 등을 통해 자랑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대놓고 돈 자랑을 하면 젊은이들이 거기에 몰려들죠. 외향만 화려한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행복은 부족한 가운데 나누면서 함께하는 데 있다는 걸 교회가 보여주고 그대로 살며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모습으로 살도록 초대해야 하죠.

◎ 한국교회의 맏형인 서울대교구가 앞으로 타교구, 나아가 아시아복음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한국교회 안에서는 다양한 차원의 협력과 상생이 잘 이뤄져 왔는데요, 이를 잘 이어갈 것입니다. 서로 나누면서 서로 간 도움이 되는 부분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세계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협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도 한국교회가 아시아교회에서 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오늘날 사회에서 이런 부분이 더 많이 요청되고 있는데요, 이에 더 잘 응답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일단 아시아교회와의 교류를 위해 신학생 양성 과정 때부터 언어의 장벽을 넘기 위한 훈련과 체험을 강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많은 신자들과 국민들이 지쳐있습니다.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어려운 시간 동안 하느님께서는 멀리서 모른 체하고 팔짱끼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어려움을 다 듣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점입니다. 정말 힘들 때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앞에 말없이 머무르며, 힘들다고 주절주절 쏟아내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분을 느끼는 계기로 삼읍시다. 특히 새해라는 선물 안에서 하느님의 선물, 새롭게 힘을 내라는 선물을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지난 2년과 다르게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을 거라 믿고 함께 나아가봅시다!

◎ 마지막으로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교구민과 한국교회 신자들, 그리고 북녘 교회 형제들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가 밝았습니다.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지치고 힘들었는데, 새해라는 시간은 쳇바퀴처럼 돌아오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라는 주님의 선물이 곧 새해입니다. 새해를 하느님께서 우리의 힘든 마음에 베풀어주신 희망과 은혜로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북녘 동포들은 마치 우리 눈에는 사라지고 없어진 듯 보이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살아있는 형제자매입니다. 분단의 역사가 70년 향해서 가다보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국민들의 염원이 다소 힘을 잃어가는 부분도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염원을 더 부여잡고 강하게 바라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교황님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큰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합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