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1) 절두산 앞의 한강물은 쉼 없이 흐르고

입력일 2021-12-29 수정일 2021-12-29 발행일 2022-01-02 제 327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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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투철한 신앙 만날 수 있는 문화 유산의 보고
병인박해의 아픔 서린 성지
순교자들 유해 모셔져 있어
교회 사료·순교자 유품 전시
교회사적으로 의미 깊어

한국 전통 건축 양식 반영한 
순교자 기념관을 비롯해
성상·유리화·십자가의 길 등
다양한 성미술품 볼 수 있어

이희태 건축가의 설계로 완성된 절두산 순교성지 기념관 전경.

우리는 살면서 값지고 소중한 것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먼 데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것을 찾다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값지고 소중한 것을 우리 곁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꼭 필요한 물건조차도 주변을 잘 살피면 찾을 수 있다.

새해에 가톨릭신문에 격주로 연재하는 글의 제목을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으로 정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놓치기 쉬운 풍경이 많다. 그러나 산책을 하면 조금 느리지만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여러 교구에도 특색을 가진 소중한 박물관이 있다. 그곳을 산책하며 아름다움과 함께 거룩함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교회 성상 가운데 가장 크게 제작된 전뢰진 작가의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상’.

교회의 박물관 가운데서 가장 먼저 한강변에 있는 절두산(切頭山)순교성지로 길을 떠난다. 마침 성지를 방문한 날에 새하얀 눈이 내려 성지와 내 마음을 덮어 주었다. 절두산은 예로부터 잠두봉, 용두봉으로 불렸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을 통해서 서울 근교로 침범해 오자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들이 더럽힌 한강을 천주교 신자들의 피로 씻겠다며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수많은 신자를 처형했다. 그래서 후에 절두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1866년에 일어났던 병인박해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절두산에 성지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에는 절두산에 기념관이 완성되어 성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희태 건축가의 설계로 완성된 기념관에는 성당을 비롯하여 27위 순교 성인과 1위 무명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성해실이 있다. 또한 성당 바로 아래에 있는 박물관에는 교회의 중요한 사료와 순교자들의 유품 등을 소장하여 전시를 하고 있다.

절두산순교성지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깊은 곳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교회 미술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보물창고와 같다.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 양식을 곳곳에 반영한 기념관과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 그리고 내·외부에 있는 교회 미술품과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은 모두 다 소중한 교회의 유산이다. 절두산에 소장한 유산을 통해서 과거 신앙 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더듬어보며 자신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넓은 마당과 아름다운 정원이다. 곳곳에는 여러 성상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우리를 거룩한 신앙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마당에는 성경을 품에 안고 강복해 주시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상’(전뢰진 작)이 있다. 우리나라 교회의 성상 가운데서 가장 크게 제작되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의 ‘순교자상’(최종태 작)은 사람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어 준다. 정원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상’(김세중 작)과 ‘성 마더 데레사 수녀상’(임송자 작)이 있다. 두 성인은 생전에 절두산 성지를 방문해 기도하신 적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성상을 세웠다. 이 외에도 뒷마당에는 ‘예수 부활상’(최봉자 수녀 작)과 대형 ‘순교자 기념탑’(이춘만 작)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성당 마당과 정원에 있는 여러 성상을 둘러보면 우리 마음 안에는 어느새 신앙이 자리 잡는다.

성지 마당을 가로지르며 낮은 언덕을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당을 볼 수 있다. 원형 형태의 성당에는 아름다운 유리화와 십자가의 길 등이 있다. 두 명의 순교자의 월계관을 들고 춤추듯이 하늘을 나는 제대 위의 ‘유리화’(이남규 작)가 성당을 더욱 성스럽게 만들어 준다. 성당 벽면에는 커다란 손과 십자가만을 부각하여 만든 ‘십자가의 길 14처’(최의순 작)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느낌을 준다. 제단 옆에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성해실에 순교 성인과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 교회가 순교자들의 희생 위에 우뚝 서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신앙 선조들의 유물과 유품이 전시된 순교자 박물관 내부.

성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최종태 작가의 순교자상.

성당에서 기도를 바친 후에 나와 계단을 내려가면 순교자 박물관이 있는데, 입구 벽에서 부조 ‘팔마가지’와 ‘순교자의 모후’(이순석 작)가 있다. 최근에 내부 공사를 해서 사람들이 더욱 가까이서 전시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의 소중한 전시물을 보면서 우리는 신앙 선조들의 고귀한 삶과 투철한 신앙을 만난다. 소중한 유물과 유품이 신앙과 참 삶에 대해서 말없이 속삭이며 우리의 잠든 신앙을 일깨운다. 절두산 기념관의 부속 건물로 박물관이 있지만 절두산순교성지 전체가 커다란 교회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절두산순교성지에 가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양손을 모우며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성지를 거닐면서 사람에게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절두산에서 그리고 이 땅 곳곳에서 순교한 무수한 신앙 선조들은 사람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신앙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순교자들이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히 여겼던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앙, 그분들의 깊은 신앙을 오늘날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본받을 수 있을까? 지난 연말 하얀 눈이 내리던 날 찾았던 절두산순교성지에서 이 물음을 내 자신에게 계속 던지며 짧은 순례를 마쳤다. 또한 절두산 순교성지나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은 교우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참되고 소중한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웅모(에밀리오) 신부

※현재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장안동본당 주임, 주교좌 성당 유물 담당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