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150. 복음과 사회교리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

입력일 2021-12-29 수정일 2021-12-29 발행일 2022-01-02 제 3276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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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추린 사회교리」 103항)
인간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자 치료제 ‘형제적 우정’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시며
‘복음적 사랑’ 보여주신 그리스도
신앙인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중)

■ 나는 너희를 친구라 불렀다

“그리스도교가 2000년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참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구원, 진리 때문이겠습니다만 저는 이에 더해 진정한 사랑의 신비를 간직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께서도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모든 거대한 제국들이 역사 안에서 명멸해왔으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사랑의 나라는 영원히 이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대 종교에서 신은 인간 위에 군림했고 인간은 노예였습니다. 그러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5,15) 또한 지고하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라 하셨습니다. 이는 대단한 파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치시며 친구를 위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게 됐고 참된 삶을 발견했으며 가톨릭교회가 이어져 온 것입니다.

■ 사회교리의 바탕, 형제적 우정

1891년 레오 13세 교황께서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발전, 이를 통해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을 ‘새로운 사태’라 말씀하시며 그 속에서 인간과 세상이 걸어야 할 길을 담은 회칙을 반포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입니다. 그 핵심은 사랑, 애덕, 형제애, 우정입니다.(41항 참조) 세속적 관점과 달리 사랑과 우정은 형제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복음적 차원에서 그 본질이 같습니다. 우정은 사회교리 안에서 연대성의 원리, 사회적 애덕으로 깊이 있게 표현되며, 인간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자 조건으로 갈등과 욕심을 치유하는 치료제로도 표현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79항) 오늘날도 과연 새로운 사태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기도 잦은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복음적 사랑과 형제적 우정입니다.

■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32)

예로부터 행복을 위한 조건을 오복이라 일컬어 왔습니다. 장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 등인데(「서경」 홍범편 참조) 여기에 치아, 건강함, 배우자, 자손 등을 더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친구를 더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친한 친구가 있습니까? 힘들 때 의지하고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도 나누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친구가 있다면 행복한 것이고, 만일 없다면 만들면 되겠지요.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따뜻한 친구 같은 존재여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따스한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친구가 돼 준다는 지향과 기도, 그것이 내 삶의 자리를 더 환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 복음 전체를 요약하며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항상 자신을 희생시킬 만반의 태세를 갖춘 그리스도교 사랑, 곧 애덕이다. 애덕은 그야말로 세속의 교만과 이기심을 해소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약이다. 애덕의 신적 요소들에 대하여 성 바오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새로운 사태」 41항)

이주형(요한 세례자)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