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그리 아니하시더라도 / 오한나

오한나(한나·제1대리구 죽전1동본당)
입력일 2021-12-22 수정일 2021-12-22 발행일 2021-12-25 제 327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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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그냥 믿고 따라와 주면 안 되겠니?’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건만, 뭐가 불만인지 학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가기 싫다’고 투덜대는 아이를 보며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외쳐봅니다.

“넌 참 좋겠다. 누가 나도 이렇게 제일 좋은 것들로만 대신 좀 알아봐 줬으면 좋겠는데…….”

누구보다 아이의 성향에 대해 잘 아는 부모는 최선의 선택들을 모아 자녀를 위한 다양한 길을 제시합니다. 등 떠밀려 하게 된 결정이든, 스스로 해 보겠다 한 결정이든, 버겁고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 과정이 중요하고 필요하기에 부모는 아이가 잘 해내기를 응원하고 이로 인해 성장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큰 아이가 입시를 준비 중인 학교에 서류제출 차 다녀왔습니다. 초초해 하는 아이 손을 꼭 잡고 차 안에서 함께 주모경을 바친 후, 원서접수처로 향했습니다.

‘주님 우리 이레네 잘 부탁드려요.’

서류를 내고 돌아나오는 학교 벽에 몰래 쓱 십자가를 긋는 순간 아이랑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눈을 찡긋거리자, 딸아이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습니다. 표정을 보니 썩 나쁘지는 않습니다.

“엄마, 대낮인데도 달이 밝아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가 정적을 깨고 말을 건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이야~ 대낮에 이렇게 달까지 환하다니! 너 시험 운이 좋으려나 보다.”

깔깔대고 아이가 웃습니다. 손을 맞잡고 주모경을 바칠 땐 언제고, 몰래 벽에다 십자가를 긋다 들키고, 달님이 밝다고 ‘행운’ 운운하는 엄마의 행동들이 참으로 웃기답니다.

잠든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늘 기쁨 속에서 살아갔으면 좋겠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이겨내야 하고 감당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애잔합니다. 아이의 이마에 새겨진 인호가 빛을 내는 듯 저를 위로합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주시리라.(시편 37,5)”

‘나만 믿고 따라오렴.’ 참으로 든든한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셨음에도 광야로 내보내신 주님은 저와 자녀들 역시 ‘삶의 광야’에 내어놓으셨지만 밤낮으로 몸소 먹이시고 재우시며 ‘최선의 계획’대로, ‘주님의 뜻’ 대로 살도록 길러내고 계십니다.

‘제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그리 아니하시더라도 준비된 더 좋은 것을 주시리라 믿으며 내일을 맡깁니다.

오한나(한나·제1대리구 죽전1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