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랑이 밥 먹여준다」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1-12-08 수정일 2021-12-08 발행일 2021-12-12 제 3273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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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종 신부 지음/256쪽/1만5000원/마음산책
매일 사랑 담아 따뜻한 밥을 짓는 사제의 진심
노숙인들의 대부로 불리기까지
나눔의 여정과 삶의 애환 담아
헐벗은 이웃 돌보고자 다짐한
하느님 체험에 관한 일화 눈길
1990년 5월, ‘죽을 때까지 이 나라에서 봉사하며 살 것’이라는 각오로 한국을 찾은 김하종 신부. 노숙인들을 위해 열심히 밥과 음식을 만들고, 갈 곳 없는 청소년들에게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했던 김 신부에게 앞치마는 유니폼과 같았다. 이방인으로서 느낀 소외감, 허름하고 냄새나는 노숙인을 돌본다는 이유로 자신을 향했던 가슴 아픈 말들.

이탈리아인 사제가 한국과 함께한 30년은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김 신부는 “이제 한국 사람들은 나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에는 김 신부가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일깨우고 무한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꿋꿋하게 걸어온 여정들이 담겨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1987년 신앙인 빈첸초가 사제로 새롭게 태어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으로 품었던 삶의 꿈들을 내려놓고 청빈, 정결, 순명으로 자신을 채운 김 신부는 세네갈에서의 선교생활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성당을 향하던 돌길, “안녕, 빈첸초”하고 정겹게 인사를 건네던 이탈리아 고향 마을의 어른들, 소년 시절 라파엘라 수녀님의 비석 앞에서 했던 맹세, 세네갈 사막에서 마주했던 뜨겁고 메마른 모래 바람의 기억 등 자신에게 위로가 돼 준 추억들을 꺼내놓은 김 신부는 “‘나는 왜 이렇게 작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하고 마음이 조급한 분에게 이 책은 분명히 손을 내밀 것”이라고 말한다.

오래되고 낡은, 어둡고 곰팡내 가득한 공간에서 들었던 예수님의 목소리도 김 신부의 사제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지하 방에서 곰팡이와 악취,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는 한 남자를 통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김 신부는 이웃의 헐벗은 삶은 예수님 옆구리의 상처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 삶을 내놓으며 이웃들의 상처를 내가 품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그 다짐은 노숙인 급식소이자 탈가정 청소년 쉼터인 안나의 집으로 이어졌다. 1993년 처음 앞치마를 두른 순간부터 목련마을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만난 아이들,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의 손을 잡아준 예수님의 존재, 민원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순간까지 안나의 집에서 만난 사람들, 그곳에서 함께한 이야기들은 삶의 온도를 따뜻하게 높여준다.

익숙하지 않은 탓에 밥과 떡을 먹지 못했던 이탈리아인 사제는 이제 누구보다 맛있게 밥을 짓고 김치찌개를 끓인다. 삶을 함께하기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한국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고 정말로 한국을 사랑하게 됐다는 김 신부. 그가 걸어온 사랑의 발자취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시기에 좋은 길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