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1-12-07 수정일 2021-12-07 발행일 2021-12-12 제 327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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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여러 분들을 모시고 경기도 파주시 적성군에 있는 ‘적군 묘지’를 다녀왔습니다. ‘적군 묘지’는 ‘북한군 중국군 묘지’였다가 오래 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회담과정에서 중국군 유해를 송환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지금은 ‘북한군 묘지’만 남아 있습니다.

‘적군 묘지’를 보시는 분들 중에는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람들까지 무덤을 만들어 준단 말이야”라며 불쾌감을 표현하시기도 합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적군 묘지’는 우리 국방부가 제네바 협정에 따라 행한 조치였습니다. 제네바 협약 추가의정서 제34조에는 ‘교전 중 사망한 적군 유해를 존중하고 묘지도 관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 곳곳에 산재해 있던 유해를 1996년에 한데 모아 관리한 것입니다.

이곳에 와서 보면 ‘6·25전쟁’ 기간의 유해뿐만 아니라 ‘무장공비’로 침투했으나 북쪽 당국이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아 돌아가지 못한 다수의 유해도 있습니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남쪽에 왔으나 국가로부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유해들도 이곳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념은 무엇인지, 전쟁은 무엇인지’라는 상념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북쪽에 남아 있는 우리 국군 유해가 제네바 협약에 의해 잘 보존돼 있기를 갈구하게 됩니다. 우리가 ‘국군 유해 송환’을 말합니다만 발굴된 유해가 송환되기 전까지, 비록 이제는 사람과 흙의 경계를 나눌 수 없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을지언정, ‘묘지’를 통해서나마 그 ‘존엄’이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적군 묘지’ 유해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입니다.

‘적군 묘지’의 묘석은 모두 북쪽을 향해 있습니다. 죽어서나마 고향 땅을 바라보고 있기를 기원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죽음과 슬픔에 대해 구상(요한 세례자) 시인은 1956년 ‘적군 묘지 앞에서’를 남기셨습니다. 함께 구상 시인의 마음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들어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