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97)공동체를 통한 구원과 성장

입력일 2021-12-07 수정일 2021-12-08 발행일 2021-12-12 제 3273호 1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다시금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예전 직장에서 까다로운 상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다. 매주 하는 CLC(Christian Life Community) 그룹 모임에서 내가 나눴던 이야기는 많은 부분이 그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어떻게 이 시간을 이겨 내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나눔을 많이 하곤 했다.

그때 같이 그룹 모임을 하던 회원들은 나의 그런 어려움에 대해 함께 안타까워했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를 더 느껴 보라며, 매일 의식 성찰 기도를 할 때 하루 중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나와 함께하셨는지 좀 더 살펴보라고 영적 조언을 해 주었다. 내가 힘들어하면 할수록 내 나눔을 잘 경청해 주면서도 그 노력을 놓치지 말라며 계속 일깨워 주었다.

그 얘기를 듣고서 사실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내가 공동체에 좀 더 기대했던 것은 그 상사가 얼마나 나쁜 인간인지 같이 분노해 주고, 비난해 주고, 내가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인간적인 위로를 듬뿍 해주는 것이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공동체가 그렇게 해 준다면 기분이 확 풀릴 것 같았다.

결국 공동체 조언대로 예수님께 더 매달리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께서는 내 생활 가운데 어디에 어떻게 함께하고 계시는지,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고, 무엇을 더 애써야 하는지 그분께 묻고 물었다.

그렇게 예수님께 매달리면서 어떤 날은 용기가 나서 부당하게 대하는 상사와 싸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예수님께 깊은 위로를 얻기도 했다. 어떤 날은 도무지 변하지 않는 내 상황 때문에 다시 절망하고 좌절하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작은 것에 기쁨과 행복이 느껴져 다시 힘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예수님과 함께하는 투쟁의 시간이었고, 그 과정을 공동체와 계속 나누어갔다. 공동체는 그런 나를 계속 지켜봐 주면서 내가 만났던 예수님에 대한 나눔을 귀담아 들어 주고, 내가 발견했던 일상 속 작은 행복과 기쁨에 대해 함께 기뻐해 주었다. 공동체가 있어서 공동체와 함께 예수님을 만나고 계속 대화해 갈 수 있었다.

만약 공동체가 내 힘듦에 대해 인간적 위로와 공감, 격려만 해주는 것에 그쳤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것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예수님께 그렇게까지 매달리기보다는 인간적 위로와 격려에 더 의지했을 것이고, 그 효과는 길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적인 위로와 격려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가야 한다.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님이 쓰신 성서 묵상집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향해 가는 여정을 토끼를 쫓는 개들에 비유한다. 여러 마리 개들이 모두 짖으며 달려가지만, 토끼를 직접 보지 못했던 개들은 결국 걸음을 멈추게 되고, 토끼를 직접 봤던 개만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쫓아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향해 가는 여정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과 고유하게 만나는 과정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함께 뛰는 개들이 있어 토끼를 쫓는 의지를 더 불태울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께 나아가는 과정도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예수님과 함께 나아가는 여정을 같이하는 이들의 공동체다. 예수님을 통해 희망과 기쁨을 찾고 그분을 더 닮으려 애써 가는 가운데 서로 격려하고 도전하고 힘을 주고받는 것이다.

공동체가 개인의 당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공동체가 항상 올바른 길을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그분 사랑을 느끼며, 예수님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도울 수 있다. 개개인은 이기적이고 약하지만, 공동체를 통해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회심하고, 다시금 그분께로 나아갈 수 있다. 성령께서 공동체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동체를 통해 그분께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한준(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