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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순례 / 강버들 신부

강버들 신부(요당리성지 전담)
입력일 2021-12-01 수정일 2021-12-01 발행일 2021-12-05 제 327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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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스페인으로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야고보 사도 유해가 모셔져 있는 그 유명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갔습니다. 도보 성지순례로 유명한 이곳에 우리 순례팀은 일정상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곧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동하였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목적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내려 조금이라도 도보로 걸으며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마침내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많은 순례자가 모여 있었습니다. 목적지를 방문해 좋긴 하였는데, 왠지 모를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정말 스페인을 횡단하며 도보로 성지순례를 시작하고 이곳에서 마친 순례자들은 얼마나 기쁘고 보람찼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순례 방법이 다르긴 했지만 기나긴 과정을 거친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느끼는 점은 저와 분명 달랐을 것입니다. 살짝 부러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과정’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교구 청년들과 함께 갈매못성지를 순례하던 때였습니다. 갈매못까지는 꽤 먼 거리였는데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였습니다. 갈매못까지 끌려가신 성인들은 가시던 길에 무엇을 하셨을까 생각하다가 ‘묵주기도를 하지 않으셨을까’라는 생각에 내려가는 길 차 안에서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해 미사를 봉헌하고 이곳에서 순교하신 성인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바쳤는데 각 처 기도는 청년들 한 명 한 명이 각자 성지에서 준비한 기도로 바쳤습니다. 청년들이 기도를 얼마나 잘 작성했는지 모릅니다. 성지순례를 위한 작은 준비와 계획으로 ‘과정’이 잘 이루어진 덕분에 은혜로운 성지순례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지순례를 떠나면 나의 삶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쁜 일상의 생활에서 훌쩍 떠나 하느님의 사람들인 성인, 성녀의 삶과 죽음을 더욱 가까이에서 보고 느낍니다. 이분들이 하느님 나라로의 순례길을 걸어가신 모습은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주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다시금 제시해줍니다.

이 세상에 천년, 만년 살 것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순례의 길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세상 걱정과 유혹에 붙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깃털처럼 가볍게, 서로 격려해주며, 서로 붙잡아주며, 이웃과 함께 하느님 나라로의 순례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성지순례를 떠날 때 많은 짐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만을 챙기면서 짐 때문에 순례에 방해가 되지 않게 준비합니다. 나의 순례길도 여러 가지 욕심들 말고 꼭 필요한 것만 챙겨가도 충분할 것입니다. 가벼워지고 비워진 만큼 하느님 나라로의 순례길은 그리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이 마지막 연재입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버들 신부(요당리성지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