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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두 번째 순명 / 강버들 신부

강버들 신부(요당리성지 전담)
입력일 2021-11-16 수정일 2021-11-16 발행일 2021-11-21 제 327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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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 조선 천주교회에는 세 분의 서양인 프랑스 선교사들이 사목하시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천주교회를 박해하였고, 이에 세 분의 선교사는 몰래 조선에 입국해 활동하셨습니다.

세 분 선교사는 앵베르 주교님(입국 1837년)과 모방 신부님(입국 1836년), 샤스탕 신부님(입국 1837년)이십니다. 세 분 모두 103위 성인에 포함되신 분들입니다. 세 분의 활동으로 당시 조선 천주교회는 크게 성장하고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1839년 기해박해 때 세 분 선교사는 순교하셨습니다.

기해박해 때 많은 신자가 체포되고 순교하는 가운데, 앵베르 주교님과 모방·샤스탕 신부님은 몸을 피하시고 숨어계셨습니다. 앵베르 주교님은 조선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수하려는 마음을 여러 번 가지셨습니다. 박해가 더 심해지자 앵베르 주교님은 모방 신부님과 샤스탕 신부님에게 중국으로 피난하라고 하시며 자신은 자수하여 순교하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두 신부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교님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두 신부님에게 잘 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모방 신부님과 샤스탕 신부님은 이에 순명하셨습니다. 첫 번째 순명이었습니다.

더욱 혹독해진 박해는 세 선교사를 잡아들이려 하였습니다. 4개월 동안 안전하게 숨어 있었고 앞으로도 얼마 동안 계속해서 숨어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두 신부님에게 앵베르 주교님의 명이 내려왔습니다. 자수하라는 명이셨습니다. 주교님은 결국 자수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샤스탕 신부님은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보아서 주교님께서는 양들을 구하기 위해서 ‘착한 목자가 자기 생명을 바쳐야 한다’고 슬기로운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자수하신 그분께서 솔선하셔서 저희에게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한 분의 희생자로 만족하지 못한 극렬한 박해자들은 세 분을 죽일 것입니다. 숨어 있으라고 저희에게 명령하셨던 주교님은 이제 자수하라고 하시는데, 첫 명령에 기꺼이 복종하여 숨었던 저희는 두 번째의 명령에 똑같이 기꺼이 복종하여 자수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천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고 그분의 거룩하신 뜻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두 번째 순명이었습니다.

앵베르 주교님이 숨어있던 두 신부님에게 자수하라는 명을 내리시자 두 신부님은 주교님의 명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시고 순교의 길을 수락하셨습니다. 조선 천주교회와 신자들을 사랑하셨던 이분들의 순명은 하늘나라가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세 분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순명 서약을 한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강버들 신부(요당리성지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