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걸어온 길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11-16 수정일 2021-11-17 발행일 2021-11-21 제 3270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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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신앙 바탕으로 생명 지키고 참 평화 일구는 노력 전개
■ 순교자 현양
서소문 밖 네거리 성지 조성과 
광화문 ‘124위 시복미사’ 준비
■ 생명과 가정
생명위원회 위원장 맡으며 
낙태 반대와 미혼모 지원 힘써
■ 평화와 자비의 성직자
북녘교회 위한 기도운동 펼쳐
노숙인 무료급식소서 봉사 실천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염수정 추기경은 그동안 교구와 한국교회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헌신해 왔다. 특히 풍부한 본당 사목 경험과 교구 행정에 밝은 시각을 갖춘 염 추기경은 교구장직을 수행하는 약 10년 동안 다채로운 사목적 노력을 펼쳐왔다. 서울대교구장으로서 그가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 하느님의 계획, 순교자 도움으로

염수정 추기경은 2012년 6월 25일 거행된 착좌미사에서 먼저 한국교회의 뿌리는 ‘순교성인들의 신앙’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서울대교구장직을 수행하면서 신앙을 목숨 바쳐 증거하고 후손들에게 전해준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이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데 큰 힘을 실었다. 특유의 인내와 뚝심으로 순교자들이 지녔던 선교의 열정을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며, 모든 일은 한 개인의 공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순교자들이 도운 결과이니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최근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조성은 그러한 뜻으로 맺은 결실 중 하나다.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순교한 자리에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과 서소문역사공원을 마련한 것이다. 이 박물관과 공원은 2011년 7월 서울대교구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서울 중구청에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 자원화 사업’을 제안하면서 조성, 2019년 6월 1일 문을 열었다.

염 추기경은 이 성지가 교회와 사회가 소통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길 바랐다. 공사 당시에는 이 자리를 가톨릭교회만의 성지로 꾸민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이젠 신자들에게는 신앙을 북돋는 공간으로, 비신자들에게는 역사를 되새기고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앞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124위 시복미사’ 준비에도 염 추기경은 정성을 다했다. 특히 조선시대 주요 관청이 자리했으며 순교터이자 신앙의 증거터인 광화문광장에서 반드시 시복식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해 교회 안팎이 함께 그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이끌었다. 당시 신앙선조들은 죄인 취급을 받아 처형됐지만, 같은 장소에서 시복미사를 거행함으로써 그들은 하느님 나라의 자유로운 시민임을 온 세상에 선포한 것이다. 2017년 9월 9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회랑에서 열린, 한국천주교 230년의 역사를 알리는 특별 전시회를 지원하는 등 한국천주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도 최선을 다해왔다. 염 추기경의 지원에 힘입어 서울대교구는 2018년 6월 25일 역사상 처음으로 교구 역사관도 마련했다.

■ 가정, 새 생명을 환대하는 자리

염 추기경이 순교자 현양 사업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룬 또 다른 사목 주제는 ‘생명과 가정’이다. 그는 모든 생명이 존중받기 바라는 예수님 뜻과 달리, 경제적 이익과 효율성, 편리함을 우선시하며 아무렇지 않게 약한 생명을 죽이고 있는 현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특히 염 추기경(당시 주교)은 2005년 발족한 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교회 생명운동에 첫발을 들였다. 이후 지금까지도 생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우리 사회에 생명의 문화를 세우는데 직·간접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염 추기경은 우선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일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자 시대적 소명임을 강조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시에 생명운동이 허울뿐인 목소리가 되지 않기 위해 미혼모가 익명이나 가명으로 출산하고 입양시키도록 보장해주는 이른바 익명출산법 제정, 미혼모의 경제적 어려움 해소를 위한 양육비 이행법과 한부모가족지원법 강화, 청소년을 위한 생명존중교육법 제정도 촉구했다.

교구 내에서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애써왔다. 지난해 4월 교구 생명위원회가 교회 내 처음으로 미혼부·모 지원을 위한 공식 기구 ‘미혼부모기금위원회’를 출범한 것은 큰 결실이었다. 미혼부모기금위원회는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미혼모에게 용기와 희망을’ 캠페인을 기반으로 발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혼부·모를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생명의 요람인 가정의 중요성과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필요성도 역설했다. 염 추기경은 “가정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기쁨을 체험하고 나누며 전하는 선교의 자리”라고 강조해왔다. 또 가정이 ‘사랑을 배우고 키우는 학교’이자 ‘신앙을 이어주는 자리’, ‘세상에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도구’임도 힘줘 전해왔다.

■ 참된 평화와 가난한 이 위해 기도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직해온 염 추기경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기도하며 참된 평화와 일치를 간절히 원하는 예수님의 뜻을 따르고자 했다. 무엇보다 미움과 증오를 넘어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항상 진정한 평화를 위해선 “숨 쉬듯 기도해야 한다”고 역설한 염 추기경은 북녘교회를 위한 기도운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2015년부터 시작한 북녘땅에 있던 신자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내 마음의 북녘본당 갖기’ 기도운동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남북관계가 얼어붙었을 때에는 ‘한반도 평화기원 대기도회’ 등의 개최를 독려하며 기도의 힘으로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는 데 힘썼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애쓰면서 남북 화해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연구와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해왔다. 2016년부터 해마다 개최하고 있는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은 한반도에 평화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이를 위한 교회 역할을 모색하는 대표적인 장이다. 또한 2015년 개소한 민화위 산하 ‘평화나눔연구소’가 민족 화해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도록 적극 격려하고 있다.

한편 염 추기경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발간한 그의 화보집 「염수정」 작업 당시 “본당 신부 시절이 행복했다”고 말한 염 추기경. 그는 1986년 서울 영등포본당 주임 당시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을 열었다. 노숙인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염 추기경은 지금도 기회가 될 때마다 서울에 있는 여러 노숙인 무료급식소에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1월에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명동 한복판에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을 여는데 적극 동참, 노숙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있다. 그리고 염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이렇게 “예수님의 시선이 가 닿는 곳,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이들”을 더욱 따뜻하게 보듬고 그들 곁에 함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염수정 추기경이 2019년 5월 29일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축성식을 거행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18년 6월 16일 서울 명동 일원에서 열린 생명대행진 코리아 행사 중 염수정 추기경(앞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등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19년 5월 18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열린 한반도평화나눔포럼에서 염 추기경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약력

1943년 12월 5일 경기도 안성 출생

1970년 12월 8일 사제수품

1971~1973년 불광동·당산동본당 보좌

1973~1977년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 교사, 부교장

1977~1979년 이태원본당 주임

1980~1987년 장위동·영등포동본당 주임

1987~1992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사무처장

1992~1998년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1998~2001년 제15지구장 겸 목동본당 주임

2002년 1월 25일 주교수품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2002년 2월~2013년 4월 재)평화방송·평화신문 이사장

2002년 10월~2012년 5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겸 총대리

2005년~현재 서울대교구 생명위원장

2012년~2014년 2월 서소문 역사문화공원·순교성지 조성위원회 위원장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장 임명

2012년 6월 25일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착좌

2014년 2월 22일 추기경 서임

2014년 5월 22일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위원, 성직자성 위원 임명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