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다시 보는 「모든 형제들」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1-11-09 수정일 2021-11-10 발행일 2021-11-14 제 3269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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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의 약함이 곧 나의 일이 되면 모든 이를 향한 ‘열린 형제애’ 가능하다
전 세계인이 코로나19 겪으며 한 배를 탄 ‘세계 공동체’ 인식 
교황은 사회적 우애 강조하며 쓰러진 이 돌보는 공동선 언급
가난한 이들에 무관심하다면 어떤 형태로든 폭력 발생할 것
고통받는 이를 위한 백신 나눔 형제애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
몇 년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가난한 이들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만들었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기초 생필품마저 부족해진 현실은 가장 힘없는 이들에게 목숨을 위협할 만큼 가혹하게 다가왔다. 안타까운 현실을 지켜보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다”(마르 14,7)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겼다. 가난한 이들의 곁에 계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운명을 함께 나눈 예수 그리스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가난한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기에 우리는 그들의 어려움과 소외를 덜어 주고 잃어버린 그들의 존엄성을 되찾아 주며 그들에게 꼭 필요한 사회 통합을 보장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 공동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형제애가 무엇인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모든 형제들」을 바탕으로 살펴본다.

■ 이 시대에 형제애가 필요한 이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권고」에서 ‘모든 형제들’(Frateli Tutti)을 언급하며 모든 형제자매에게 복음의 풍미를 지닌 삶의 형태를 제안했다. 「권고」에서 성인은 다른 이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가까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은 복되다고 선포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열린 형제애를 ‘물리적 근접성을 뛰어넘어 출생지나 거주지의 구애 없이 모든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 비극은 우리가 모두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세계 공동체라는 인식을 삽시간에 효과적으로 불러일으켰다. 그 배 안에서 한 사람의 불행은 모든 사람에게 해가 된다. 우리는 그 누구도 혼자 구원받을 수 없고 오로지 함께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감염병의 전 세계적 확산이 불러온 고통, 불확실성, 두려움, 자기 한계의 인식은 우리의 생활양식, 우리의 관계, 우리의 사회 조직, 무엇보다 우리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호소를 되울려 퍼지게 만든다.

코로나19의 비극을 통해 우리가 시간과 노력과 재화를 쏟아야 할 소속감과 연대의 공동체를 위한 공동의 열정을 되찾지 못한다면, 우리를 기만하는 전 지구적 환상이 붕괴하며 많은 이들이 고통과 공허의 손아귀에 넘어갈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나아가 소비 지향적 생활양식에 대한 집착은, 특히 소수의 사람만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때, 폭력과 상호 파괴만을 가져올 뿐이라는 점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각자도생’이라는 개념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빠르게 변질될 것이고, 이는 감염병의 전 세계 확산보다 더 나쁜 것이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 시대를 보내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말로만 국한되지 않는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의 새로운 꿈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그리스도가 복음에서 전하는 형제애

루카복음에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강도들을 만나 두들겨 맞고 다친 채 길가에 쓰러진 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사람들은 그 곁을 지나쳐 가버릴 뿐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이 멈춰 다친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돌본다. 심지어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다친 사람을 위해 쓴다. 다친 사람에게 자기의 시간을 내어주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그리스도인에게 밝게 빛나는 표상이 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밝힌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 세상을 새롭게 건설하고자 우리가 어떤 근본적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되풀이되고 있음을 전한다.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기회의 박탈로 소외된 많은 이들이 거리에 내몰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른 이웃을 우리는 눈길을 돌리고 옆을 스쳐 지나가며 그 상황을 무시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고 교황은 지적한다. 많은 고통과 상처 앞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되는 것이다. 이 비유는 다른 이들의 약함을 자기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 어떤 계획을 통해서 한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들은 배척의 사회가 건설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 다가와서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고 회복시켜 공동선을 이루게 했음을 회칙 안에서 언급한다.

야코포 바사노 ‘착한 사마리아인’. 다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그리스도인에게 밝게 빛나는 표상이 된다고 교황은 말한다.

■ 가난한 이들 위해 찾아야 할 가치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은 우리를 보편적 친교로 향하게 한다”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은 우리가 그의 삶을 위한 최선을 추구해 나가게 한다. 따라서 교황은 “보편적 사랑 안에서 관계를 맺어나갈 때 우리는 아무도 배척하지 않는 사회적 우애와 모든 이에게 열린 형제애를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인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재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재고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여러 사상가들은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이 어떤 사람에게 부족하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그것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그리스도교 전통은 사유 재산권을 절대적이거나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 모든 형태의 사유 재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한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될 권리와 남과 다른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역량도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는 ‘다른 이를 알게 되는 기쁨’으로 볼 수 있다. 교황은 “이런 인식이 없다면 다른 이들을 사회에서 무의미하고 상관없고 어떠한 가치도 없게 만드는 교묘한 방식들이 속출하게 된다”며 “사회의 일부가 마치 가난한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마냥 행동하고 세상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누린다면 어떤 형태로든 폭력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운동에 감사를 전하며 “한국교회의 너그러움과 형제애를 통해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교황자선소에서 가난한 나라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할 것”이라고 기금의 사용 계획을 밝혔다.

서울대교구 가톨릭 경제인회 윤대인 회장(맨 앞)이 회원들과 서울 쪽방촌 이웃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가난한 이 위한 교회의 형제애 실천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진 세계 경제는 가난한 이들을 향해 가장 먼저 보이지 않는 총구를 겨눴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코로나19 백신은 돈이 많은 국가,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제공됐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접종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2월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둠과 불확실성을 겪는 우리에게 백신의 발견은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며 “이 희망의 빛이 모두에게 비추도록 모두가 백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형제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모든 이에게 코로나19 백신이 공유돼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한국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에 응답, 백신 나눔 운동으로 형제애의 실천에 동참했다. 지난 1월 시작된 이 운동은 16개 교구가 참여한 가운데 48억 원(2021년 10월 기준)을 모아 교황청에 전달했다. 이는 약 8만 명이 백신을 맞을 수 있는 금액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7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에게 한국교회의 백신 나눔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