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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하느님의 은총 가득한 선물: 네 번째 퍼즐 / 정원준

정원준(미카엘·제1대리구 서천동본당)
입력일 2021-11-09 수정일 2021-11-09 발행일 2021-11-14 제 326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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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은 나의 삶에서 지낸 크리스마스 밤 중에서 하늘의 별처럼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날이었다.

그날 나는 캄보디아의 작은 시골 마을 스퉁트렝에서 초롱초롱 눈이 빛나는 아이들과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심장은 아주 조금씩 따뜻해지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처음으로 아기 예수님이 정말 초라한 마구간에 오셨다는 체험이었다.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내려오신다는 것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상황은 물론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지만, 나의 온몸과 마음은 이미 충분히 비어있는 도화지에 색색의 물감이 하나씩 수채화가 되는 것처럼 흰 바탕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드리고 있었다.

“주님, 너무나도 부족한 저를 평신도 선교사로서 불러주시고 이렇게 응답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신도 선교사로 살아가야겠다’는 굳은 결심은 그 다음 해인 2016년에 더 확고해졌다. 그해 7월과 8월 사이 나는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렸던 세계청년대회에 스텝으로서 참가하게 됐다. 그 기간에 무척 바쁘게 지내며 잠도 아주 적게 잘 수밖에 없었지만, 엔니오 모리꼬네의 ‘가브리엘 오보에’ 시작이 온 세상에 조용히 울려 퍼져 공기를 정화하는 것처럼 잔잔한 감동이 느껴졌다.

동시에 생활성가 ‘하느님 그리고 나’ 중 그분께 고백의 기도를 드리는 가사처럼 전율이 파고 들었고, 아주 경건하면서도 거룩한 은총이 둘러앉은 떼제 성가 ‘주님 십자가로’ 합창처럼 나의 마음을 휘감았다.

이렇게 나는 2015년 12월 성탄에 평신도 선교사로 살아가기로 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는 내가 머무는 이 자리에서 독신으로 봉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세계청년대회 폐막미사에 참례하면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폐막미사 내내 제대를 향해서 구름 사이에서 내리비추는 빛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그때 감동은 지금까지도 내가 이렇게 기쁘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캄보디아 스퉁트렌에서의 봉사 활동과 폴란드 크라쿠프에서의 세계청년대회는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해주시는지 아주 격렬하게 체험했던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 다가올 거라고 생각도 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서 요청했던 것에 응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용기였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이미 나를 잘 알고 계시는 하느님의 은총 가득한 선물이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고 있다.

이후부터 나는 그분 부르심에 늘 깨어서 응답할 수 있는 은총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정원준(미카엘·제1대리구 서천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