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91) 배우자가 있어 함께할 수 있는 여정

고유경(헬레나·ME 한국협의회 부대표)
입력일 2021-10-26 수정일 2021-10-26 발행일 2021-10-31 제 326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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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안에서 익어가는 부부의 시간

ME를 체험하고 발표팀 부부로서 봉사하는 우리 부부도 때론 서로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우리 부부관계에 대한 회의가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이러면서 ME 부부라고 할 수 있나? ME 그만두자, 이러면서 부부들 앞에서 발표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한마디로 ME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없고 부부들 앞에 선다는 것이 가식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럴 때 우리의 마음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주는 것은 선배 부부들의 모습이다. 서로 다정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두 손을 잡고 부부 소개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래, 우리도 저렇게 나이 들어가야지’, ‘우리가 ME 안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저분들의 모습에 있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그분들도 ME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많았고 배우자가 실망스러운 때도 많았지만 ME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신다. 많은 부부가 ME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함께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시험에서 아는 문제 나왔을 때처럼 반갑고 마음이 든든하고 안심이 된다. 저분들의 발걸음만 따라가면 우리 부부도 저렇게 아름다운 부부로 나이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기가 막히게 조화로운 느낌을 주는 부부도 처음부터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하신다. 왜 하필 저런 사람과 혼인해서 이렇게 고생하며 살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다르고 안 맞는 부부가 부단히 노력하며 살다 보니 이런 모습이 되었노라고 한다. 어떤 선배 부부는 지금도 하나도 맞는 게 없어 자주 싸우지만, ME 안에 머무르며 매번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의 좋은 점을 발견하며 다시 사랑하게 되는 기적을 경험한다고 고백한다.

지난 주말에는 서울 ME 총회와 정년식이 있었다. 한국 ME 발표 부부들은 부부 중 한 사람이 65세가 되면 봉사팀 부부로서 정년을 맡게 된다. 정년 제도가 생긴 것은 2003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기대 수명이 지금보다 낮고, 사회적으로도 65세면 은퇴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65세에 현역에서 물러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년을 맞으시는 선배 부부들을 보면 아직도 한참 활동하실 수 있는데 현역에서 물러나신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아쉽지만, 그분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공식적인 자리는 훈훈하고 따뜻했다.

정년을 맞는 선배 부부들은 하나같이 ME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며 후배들도 포도나무에 가지처럼 ME 공동체에 꼭 매달려 있으라고 당부한다. 요즘처럼 물질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부부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ME 운동에 헌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발표 부부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ME 주말을 준비하고, 본당에서 부부들을 ME 주말에 초대하다 보면 세상일에는 조금 거리를 두게 된다. 세상눈으로 우리 ME 부부들을 보면 좀 낯설고, 어리석거나 이상한 사람들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시간과 열정, 돈을 써가며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정년을 맞는 선배 부부는 “우리 부부가 지난 30년 동안 ME에 헌신하며 살았지만 실은 배우자와 잘 살기 위해 ME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고 그 덕에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러기에 무수히 거절당하면서도 계속해서 더 많은 부부를 ME에 초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정년식에서 선배 부부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부부는 참 복 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분들과 함께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세상 어디에서 얻을 수 없는 복을 덩굴째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정이 우리 부부를 성장하게 했고 더 아름다운 부부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느님께 구하고 싶은 단 한 가지는 배우자와 너무 일찍 헤어지지 않도록 보살펴 달라는 것이다. 우리 부부도 선배님들처럼 영광스럽게 정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께 조심스럽게 기도하게 된다.

고유경(헬레나·ME 한국협의회 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