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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착한 이웃의 도움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1-10-19 수정일 2021-10-19 발행일 2021-10-24 제 326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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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학자 윌리엄 헤들리(William R. Headley) 신부는 미국 국제 원조기구인 가톨릭구제회(Catholic Relief Services, CRS)와 함께 활동했으며, 70개 이상의 국가에서 원조활동에 관여했다. 그는 CRS의 활동을 가톨릭교회의 피스빌딩(Peacebuilding, 평화구축) 측면에서 분석하기도 했는데, 2004년 쓰나미가 휩쓴 인도네시아 반다아체(Banda Aceh)의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다.

2004년 12월 말 남아시아를 강타한 대지진은 반다아체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이곳은 원래 국제 NGO가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아체의 반군과 대립하고 있던 인도네시아 정부는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NGO에게도 반다아체가 있는 수마트라 북부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지했었다. 정부군의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상황에서 고통받는 수마트라 북부 주민들은 고립돼 있었던 것이다. 대재앙 때문에 역설적으로 국제기구의 개입이 가능해졌지만, 이슬람 종교색이 강했던 이곳에서 서구 세계와 그리스도교는 매우 이질적인 것이었다.

가톨릭구제회가 구호 초기에 아체의 일반 주민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물을 때마다 그들은 거의 무슬림 여성을 위한 예배용 깔개와 베일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절대적 빈곤 상황에서 타종교를 위한 물품을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열심한’ 가톨릭 후원자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CRS 긴급 대응팀이 초기 활동에서 역점을 둔 것은 ‘종교적 민감성’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구호원조를 계속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헤들리 신부는 초창기에 아체 주민들에게 그들이 원한 종교 용품을 제공한 것이 신뢰 기반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지역주민들에게 CRS가 ‘친구’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CRS는 2007년 말까지 인도네시아에 1억6200만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이 지원금은 기반시설 사업과 긴급 원조 등에 사용됐다.

1960년 한국에서 사목을 시작한 메리놀 외방 전교회 함제도(Gerard E. Hammond) 신부는 1990년대 북한에서 벌어진 대량 아사 사태를 목도하고 적극적인 대북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후 유진벨재단 등과 함께 50차례 이상 방북했으며, 도움을 준 결핵 환자만도 25만여 명에 이른다. 정이 든 북한 사람들이 자신을 ‘할아버지’라고 불러줄 때 기뻤다는 푸른 눈의 노(老)사제는 “우리는 결코 남한의 경제적 노예가 되지 않을 겁니다”라는 그들의 마음이 안타까웠다. 너무 가난했던 나라, 남한의 모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화해를 위해 기도하는 한국교회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앞장서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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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