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90) 은총 긷는 두레박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입력일 2021-10-19 수정일 2021-10-19 발행일 2021-10-24 제 3266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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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회 배척하지 않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출근길 길목에 아름다운 건물이 있었다. 교회 같기도 한데 조금 분위기가 달라서 어느 날은 문틈으로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런데 수단을 입은 분이 마당을 거닐고 계셔서 깜짝 놀랐다. 그 지역의 성당이 어디 있는지를 알고 있는데 난데없이 그곳에 신부님이 계시다니….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그곳이 성공회 성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왠지 친근감이 들어 다음부터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성호를 긋곤 하였다.

일치와 친교의 영성인 포콜라레운동에서 시도하는 다섯 대화 채널 중에서 두 번째는 다른 교파 그리스도교회들과의 대화다. 1960년부터 포콜라리노들과 루터교 신자들이 만나면서 다른 교파 그리스도인들과의 접촉이 시작되었는데, 루터교 신자들은 포콜라레운동 회원들이 복음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그들이 분열의 원인이라 생각했던 점이 해소되었으므로 더 이상 가톨릭 신자들과의 대화를 어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결실은 1968년 독일의 오트마링에 설립된 ‘교회 일치 생활 본부’인데, 그곳의 가톨릭교회 신자들과 루터교 신자들은 공동생활을 통해, 교회 일치란 토론이 아니라 순수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1961년에는 영국 성공회와 대화의 물꼬가 트였고, 1967년에는 끼아라 루빅이 동방 정교회의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를 방문함으로써 동방 정교회와의 대화가 구체화되었는데, 이렇게 시작한 친교와 대화는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만남들은 또한 교회 일치 운동에도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 교회 일치 기도 주간이 되면 우리 본당 성가대가 모두 어느 개신교회에 가서 예배도 참석하고 성가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에게 아직 교회 일치에 대한 개념이 서 있지 않았던 탓인지 행사 참석을 위해 오가며 나누었던 성가대 식구들과의 추억만 아련할 뿐이다. 그 후 포콜라레 영성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친교를 이룰 때 그리스도인이라는 공통점이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를 알게 되면서, 성공회 성당만 보아도 그렇게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문학 동인이었던 우리는 젊음과 문학뿐 아니라 신앙이라는 점을 공통분모로 지니고 있어서인지 누구보다 잘 통했고 이야깃거리가 궁한 적이 없었다. 이제 와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느라 그렇게 밤늦도록 시내를 돌아다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개신교 신자인 그와 한 번도 종교 문제로 마음이 어긋난 적이 없었다. 특히 개신교에서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성모님 공경에 대해서도 그는 나의 이야기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말보다는 서로 배려하는 삶을 통해 그런 종교적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하여, 또 포콜라레운동에서 다른 교파 그리스도교회들과의 일치를 위해 펼치고 있는 활동들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몇 년이 지나 그는 늦깎이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하였고,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간간이 만남이 이어졌는데, 어느 날은 마음이 산란하여 근처 성당에서 미사 참례를 하였노라는 소식을 보내오기도 하였다.

나는 계속 그의 믿음을 지지해 주었고 그가 전도사로 있는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하였다. 목사 안수 후 개척 교회를 열고 목회를 시작하느라 먼 곳으로 떠날 때까지 그렇게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우연히 지인에게서 그의 소식을 들으니, 조금 일찍 은퇴하여 문학으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위로를 선물하고 있노라 하였다. 역시 그는 태생 시인이었다! 그리고 귀하게 얻은 그의 최근작 시집 한 권, 거기에는 주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속속들이 배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일치되어 함께 찬미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의 개척 교회 신도들에게도 스몄을 터, 그들 또한 다른 교회를 배척하지 않고 신실한 신앙인이 되었을 것이니, 열린 마음은 그렇듯 주님의 은총을 길어 내는 두레박이 아닌가 싶다.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