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천주교 사도직회-팔로티회(상)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1-10-12 수정일 2021-10-12 발행일 2021-10-17 제 326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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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사제·수도자 함께하는 공동체
빈센트 팔로티 성인이 설립
교회 위기 극복할 방법 찾다 ‘평신도 사도직 영성’ 강조

빈센트 팔로티 성인.

빈센트 팔로티 성인은 1795년 4월 2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1818년 5월 16일에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로마 성령본당의 주임신부로 사목하며 사피엔자대학교와 로마에 있는 여러 포교 신학교 영성지도 신부 겸 고해신부로 활동했다. 또 병원사목과 군인 피정지도, 교리교육, 사형수들을 위한 교정사목, 고아와 부랑아들을 위한 기숙사와 직업학교 운영, 상인조합의 지도신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빈민사목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펼쳤다.

팔로티 신부는 바쁘게 사목을 하면서도 밤에는 묵상과 성체조배를 하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통해 활동할 힘을 얻었다. 주님과 깊이 일치했던 그는 다른 이의 영적 상태를 꿰뚫어보고 앞날을 내다보는 은사와 두 곳에 존재하는 이처소재(二處所在: bilocation)의 은사를 하느님께 받은 신비가였다. 그는 사제로 살아간 30여 년 동안 훌륭한 설교자로서 많은 이들을 회개로 이끌었고, 특히 고해성사를 통해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도록 이끌었다. 그는 비오 9세 교황과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고해사제이자 영적지도 신부이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교회에 닥친 신앙 위기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고 선교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도 커져갔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안에서 가톨릭신자들의 신앙을 되살리고 사랑을 쇄신할 필요성을 절감했던 팔로티 신부는 교회의 사도적 사명을 효과적으로 촉진하기 위해서 교회의 모든 구성원, 곧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의 협력을 확보하고 그들의 노력을 하나로 묶는 일을 고민했다.

개인의 노력들이 한데 모아져 공통의 목표를 향해 발휘된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믿었던 팔로티 신부는 1835년 1월 9일 미사 후에 “세례 받은 모든 이를 나의 사도로 만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평신도, 교구 사제, 수도자로 구성된 천주교사도직연합회(the Union of the Catholic Apostolate)를 설립했다. 천주교사도직연합회는 1835년 7월 11일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승인을 받았다. 이어 팔로티 신부는 천주교사도직연합회의 심장 역할을 하도록 천주교 사도직회(팔로티회)와 천주교 사도직 수녀회를 설립했다.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통해 ‘모든 신앙인이 교회의 선교 사업에 협력해야 한다는 자신의 의무를 깨달을 때, 비로소 교회의 사도직 활동의 효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는 팔로티 신부의 신념이 확인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성 요한 23세 교황은 1963년 1월 20일에 거행한 팔로티 신부의 시성식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나아가야 할 ‘평신도 사도직 영성’을 한 세기나 앞서 실천한 빈센트 팔로티 신부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성인”이라고 전하며 빈센트 팔로티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