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88)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이성애(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입력일 2021-10-05 수정일 2021-10-05 발행일 2021-10-10 제 3264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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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거저 주시는 은총과 선물

추석을 앞두고 어린이집 추석 행사와 10월에 진행할 평가제 준비를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디스크를 앓고 있어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라는 처방이 있었지만, 어린이집 평가제의 지표 평가는 거의 문서로 확인되는 것들이라 의자에 앉아 컴퓨터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다. 매일 늦게까지 업무를 보면서 8월 초 허리 통증으로 입원하게 해 주신 자비로운 하느님의 예비하심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지금 아팠다면 이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준비하는 마음도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허리가 아프기 전에는 평가제 등급은 ‘무조건 A등급을 받아야 해’라는 강박적인 생각이 있었다면, 허리가 아파 꼼짝도 못했던 이후로는 결과보다는 후회하지 않을 과정에 더 충실히 준비하자는 기쁜 마음을 갖게 됐다. 교사들보다 내가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보다는, 내가 더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이렇게 주어진 시간 또한 주님의 선물임을 잊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여유를 배우게 됐다. 그렇게 매일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하면서 추석 연휴를 맞이했다.

2년 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기일이 추석이라 연도를 바치기 위해 엄마를 모시고 친정 오빠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초대해 준 올케언니에게 자매들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감사 카드를 적고 엄마가 입으실 외출복을 준비해 놓은 후, 개운한 몸으로 아버지를 뵐 수 있도록 허리 보호대를 착용한 후 엄마를 목욕시켜 드렸다. 방문 요양 보호사께서 일주일에 세 번 목욕을 시켜 주시기에 딸인 내가 엄마를 목욕을 시켜 드리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여든여덟 살 친정엄마의 몸은 근육이 더 많이 빠져 팔, 다리가 앙상했다. 목욕 의자에 앉아 불편하신 몸으로 한참을 때 미는 시늉을 하셔서 “엄마, 시원하게 때 밀어 드릴까?”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허리 통증으로 여전히 아픈 상황이었지만 엄마를 목욕시킬 수 있는 체력을 주십사 화살기도를 바친 후 씻겨 드렸다. “엄마, 때 밀고 싶으면 요양 보호사님께 때 밀어 달라고 부탁하지 그랬어?”하고 말씀드리니 엄마는 “미안해서, 힘들까봐”하고 대답하신다.

순간 울컥했다. 엄마는 늘 그런 분이셨다. 당신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시느라 정작 당신이 원하시는 건 쉽사리 표현하지 않는 그런 분이셨다. 그러기에 우리 남매는 친정엄마의 대답이 다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엄마를 유심히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엄마가 만족할 때까지 한참을 때를 밀어 드리다 보니 자세가 불편해 허리가 아파 왔다.

‘나는 엄마 한 분만 씻겨도 이리 힘든데, 엄마는 우리 사남매를 어떻게 다 씻기고 키우셨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꾸 눈물이 흘렀다. 우리 사남매를 씻겨 주셨던 분이 이제는 씻겨 드리는 동안 앉아 계신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 몇 번이나 깊은 호흡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성모님께 기도드렸다.

‘성모님! 당신께서 어여삐 여기시는 당신의 딸 배 마리아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십시오. 배 마리아를 저희 엄마로 보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엄마는 모처럼 때 미는 목욕이 개운하신지 “아이고 개운타. 때가 많이 나오더나? 내 오랜만에 때 목욕했제?”하고 몇 번을 물어보셨다.

엄마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 드리면서, 비록 허리 통증은 있었지만 이런 시간을 선물해 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엄마는 기쁘게 팥죽 한 그릇을 뚝딱 드시고 오빠네로 갔다. 오빠네로 이동하는 동안 엄마는 “기일인데 왜 식구들이 다 모이지 않느냐?”는 질문을 수십 번 하셨고, 코로나19로 인원이 제한돼 모두 모일 순 없다는 손녀의 대답을 수십 번 들으셨다. 오빠 집에 도착하니 올케언니가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음식을 정성껏 차려 놓고 가족들을 반갑게 맞아 줬다. 올케언니에게 감사한 마음과 함께 주님의 축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했다. 주님께서는 이렇듯 매일 우리에게 넘치는 축복을 내려 주신다. 다만, 그것이 거저 주시는 은총임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기에 더 마음을 열고 그분께 귀 기울이며 찾아내려 오늘도 기도드린다.

이성애(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