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603) 이상한 부작용(하)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10-05 수정일 2021-10-05 발행일 2021-10-10 제 326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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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신부님은 하루아침에 잔여 백신을 맞았는데, 그 후로 분명 이상 증세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 주된 증상은 웃기지도 않는 일인데 혼자 유난히 크게 웃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아침도 그랬습니다. 새벽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면서, 천둥 번개가 쳤습니다. 아침 미사를 드릴 때는 이러다 공소가 떠내려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비가 왔던 것입니다.

미사를 봉헌한 뒤 방에 들어온 나는 수도원 건축과 순례자 쉼터 마련, 굴비 구입을 신청한 분들의 주문서와 주소를 입력한 후 굴비 공장에 메일을 보내는데, 정말 - 천둥 번개 소리와 함께 ‘퍽’ 하더니 컴퓨터가 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놀란 나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후배 신부님 방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신부님, 내 방 컴퓨터가 벼락 맞았나봐. 뻑났어!”

그러자 후배 신부님은 내 방에 와서 컴퓨터를 보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천둥 번개 칠 때는 컴퓨터를 하면 안 되는데.”

“아니, 아침에 주문서를 넣어야 하는데 어떻게 안 할 수 있어? 천둥 번개가 야속하지.”

이 말을 듣자, 후배 신부님은 내 방 창문을 열고, 쏟아지는 비와, 천둥 번개 치는 하늘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천둥아, 번개야, 우리 원장님 방에는 치지 말아라.”

그러더니 혼자 또 까르르 웃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실성한 거 맞죠?’) 그러면서 내 방의 컴퓨터를 고쳐 주고, 유유히 자기 방으로 갔습니다. 암튼, 재미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혼자 말하고, 혼자 배꼽을 잡고 웃는 후배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백신 부작용’에 대해 정보를 찾아 봤는데, ‘실성’은 없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 후배 신부님이 평소 꼼꼼한 기질의 완벽주의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사 맞은 후에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 스스로 기뻐하는 법을 체득한 것 같았습니다. 공동체 식사 시간에 함께 밥을 먹을 때나, 혼자 마당에 있을 때나 해맑은 표정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후배 신부님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요즘 괜찮아?”

“왜요, 강 신부님?”

“아니, 너무 자주 웃고, 그런데 웃음이… 어…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에! 그래서 백신 부작용 중에 ‘실성’, 뭐 그런 것이 있나 찾아도 봤거든.”

나의 이 말을 듣자, 그 신부님은 또 다시 ‘실성, 푸하하하’, ‘백신 부작용, 푸하하하’ 정말 자지러지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크게, 소리를 내어 웃던 그 신부님은,

“맞아요. 저도 요즘 왜 이렇게 자주 웃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웃으니까 좋아요. 정말 웃고 나면 너무 좋아요.”

의료학계에는 보고되지 않을 수 있지만, 너무나 자주 - 해맑게 웃는 것, 웃긴 일도 아닌데 자지러지게 웃는 것, 한 마디로 ‘실성’, 백신 부작용이 아닐까, 나 혼자서 이상한 확신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부작용의 시점이 백신 주사를 맞고 난 후부터 실성한 듯 자주 웃고 있느니! 지금 내 옆방에서 후배 신부님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또 들리는 것 같습니다.

백신 부작용. 늘 긴장하며 살던 우리 신부님이 백신을 맞은 후, 좋은 미소를 자주, 많이 지으면서 사는 모습을 보면서, 부작용 중에도 정말 이상한 부작용, 좋은 부작용이 다 있구나 싶습니다. 그 신부님의 부작용으로 인해 덕분에 나도 웃고, 함께 사는 다른 수사님도 웃고.

‘정말, 부작용… 아니, 좋은 부작용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하지만, 요즘처럼 웃을 일 없는 때에 해맑은 신부님의 실성한 웃음과 미소는 진정 좋은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부작용이 다 있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