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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14) 자녀가 없는 가정에 신앙 전수는 먼 이야기 같아요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
입력일 2021-10-05 수정일 2021-10-06 발행일 2021-10-10 제 326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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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의 본질은 부부의 사랑과 협력
출산뿐 아니라 다양하게 나눌 수 있어
어린이·청소년 복음화 향한 헌신 등
다음 세대에 신앙 이어주며 확장해야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저희 부부에게 아기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의학적으로도 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왜 저희 부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한동안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터널 속을 헤맨 끝에 저희 부부는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런데요 신부님, 가정이 신앙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저희처럼 자녀가 없는 가정에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불임 부부들의 아픔을 들을 때면 참 마음이 저립니다. 얼마나 많은 날을 눈물 속에서 하느님께 아기를 청했을지. 그리고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모습을 볼 때면 욥의 탄원이 떠오릅니다. “어찌하여 이런 시련을 내리십니까? 그 까닭이라도 알려주소서.”(욥 10,2) 어느 날 갑자기 자녀와 재산을 다 잃고 질병까지 얻게 된 욥은 죄가 없는 자신에게 왜 이러한 시련을 주시는지 하느님께 탄원합니다. 욥의 이야기는 우리가 맞닥뜨린 고통이 우리가 언젠가 저질렀을지 모르는 잘못이나 죄에 대한 벌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해 너머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욥과 마찬가지로 삶 안에서 알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불임 또한 우리의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런 고통이지요. 욥과 같이 하느님을 떠나지 않고 의탁할 때, 하느님께서는 결국 우리 이해 너머에 있는 계획 안에서 감히 기대하지 못할 방식으로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시고, 더 큰 하느님의 선을 이뤄내실 것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자녀출산 이후 자녀의 양육에만 더욱 힘을 쓰는 모습을 봅니다. 자녀가 혼인에 있어 가장 큰 선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혼인의 목적이 자녀 출산과 양육에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혼인성사를 준비하며 작성하는 혼인진술서에서는 다음의 질문을 통해 혼인의 목적을 상기시킵니다.

“혼인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자녀를 낳아 잘 기르기 위한 것임을 알고 계십니까?” (교회법 제1055조 1항; 제1096조)

이처럼 혼인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 바로 부부 사랑과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목적 중 일차적인 목적이자 혼인의 본질은 바로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돕는 것에 있습니다. 설사 자녀가 없다 하더라도 혼인의 가치와 불가해소성은 보존되기에, 자녀가 없는 가정은 그 모습 그대로 혼인의 일차적 목적인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도와 사랑의 역동성을 키워가기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말씀하십니다. “혼인한 많은 부부들이 자녀를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에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르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우리는 다음도 알고 있습니다. 혼인은 출산만을 위하여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 그러므로 가끔 간절히 바라는 아이가 없더라도 혼인은 온 생애의 공동생활과 친교로서 지속되며, 그 가치와 불가해소성도 보존됩니다. 게다가 모성은 오로지 생물학적인 현실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됩니다.” (「사랑의 기쁨」, 178)

이처럼 부부의 사랑은 자녀를 출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향해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강물이 계속 흘러 바다에 닿을 때 그 강의 생명체들도 계속해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정 또한 사랑을 가두어두는 것이 아니라 확장해 나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자녀가 있는 가정은 세례를 주고 자녀가 신앙의 정신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자녀가 속한 또래와 학교, 지역공동체, 사회로 사랑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없는 가정은 부부 간에 한 몸으로서 일치를 이루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복음화의 사명과 사회적 의무를 잊지 않고 가정 안의 사랑을 세상에 나누고자 애써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가정도 비로소 생명력을 얻을 수 있게 되지요.

심리학자 에릭슨(Erikson)에 의하면 중년기의 중요한 발달과업은 다음 세대(second generation)에 자신을 남기고 기여하는 ‘생산성’(generativity)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산성이란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생물학적인 현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위한 공동선을 실현하고 귀한 가치와 신념을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게 하는 것 또한 생산성을 획득하는 것이자 자신을 남기는 것이지요. 따라서 자녀가 있는 가정이든, 자녀가 없는 가정이든, 독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든 다음 세대가 자신이 추구했던 귀한 가치와 신념을 이어가게 할 때 그 삶의 보람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부부가 다음 세대에 이어주어야 할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 신앙은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일생 하느님 아버지의 꿈을 좇아 사셨습니다. 그 꿈은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이어준다는 것은 바로 그들이 예수님이 꾸셨던 꿈에 헌신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 이어주기의 핵심입니다.

신앙의 씨앗을 뿌리는 봉사, 다음 세대인 어린이·청소년의 복음화를 향한 헌신, 그리고 삶을 통해 신앙을 나누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부부가 가진 역동적인 사랑을 나누십시오. 특별히 자녀가 없는 부부들은 두 사람의 사랑을 가정에 가두거나 사랑이 퇴색되게 내버려 두지 말고 더욱 역동적으로 다음 세대와 나누어 확장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교황님의 말씀처럼 “부부를 결합시키는 애정은 줄어들지 않고 새로운 빛으로 넘쳐나게 (「사랑의 기쁨」, 181)” 될 것입니다.

※자녀, 손자녀들의 신앙 이어주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 조부모들은 이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서 답하겠습니다.

이메일 : hatsal94@hanmail.net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