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그림이 기도가 될 때」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1-10-05 수정일 2021-10-05 발행일 2021-10-10 제 3264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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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요세파 수녀 지음/240쪽/1만5000원/파람북 
고흐의 ‘낡은 구두’ 보며 그리스도의 희생 떠올려
명화와 명작을 영적으로 해석
생명·자유·사랑 등으로 표현
그림 안에 담긴 초월적 실재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안내
노을이 지는 저녁,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에서 하루의 힘겨운 노동 뒤 겸허히 하루를 바치며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밀레의 ‘만종’, 방향을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얼굴을 부여잡고 절규하는 모습을 그린 뭉크의 ‘절규’, 밤거리를 밝히는 노란 불빛과 은은히 퍼지는 별빛 아래 놓인 카페를 그린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우리가 익숙하게 보고 들었을 그림들 앞에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하나의 신비를 발견한 장혜경 수녀(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봉쇄수녀원). 기도 안에서 묵상을 하듯 그림과 함께 묵상한 장 수녀는 저서 「그림이 기도가 될 때」에 자신에게 다가온 경탄의 순간들을 담아냈다.

“그림 안에는 화가의 삶이 녹아 있고 더 들어가면 화가 자신마저 넘어 저 먼 어떤 것, 인간의 눈에 희미한 어떤 것 혹은 실재가 우리 앞에 턱 놓이는 체험을 하게 된다”고 전한 장 수녀는 부부가 바라보며 기도하는 대상이 죽은 아기에서 바구니로 바뀐 밀레의 만종에서 ‘고통 속에서의 평화’를 찾아냈고,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있음에도 평온한 마리아의 모습을 담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을 소개하며 세상의 수많은 고통을 끌어안고 보듬어주는 강력한 치유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름답거나 혹은 유명하다는 이유로 놓쳤을지도 모르는 그림 안에 담긴 초월적 실재에 대한 장 수녀의 설명은 삶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탐미적 성향을 띠는 작품은 눈에는 예뻐 보이긴 하지만 하나의 세상을 열어주지는 못한다”고 밝힌 장 수녀는 자신의 마음에 머문 작품, 즉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을 표현하는 그림들을 책 안에 담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낡은 구두 한 켤레’.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잘 알려진 베르메르가 그린 ‘젊은 여인의 초상’은 요즘 시대의 미인 기준에선 벗어난 모습이다. 하지만 소녀의 맑은 눈에 주목한 장 수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깨닫는 날, 맑음의 고귀함도 더 크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낡아빠져 더 신을 수 없을 것 같은 구두를 그린 고흐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낡은 구두 안에서 예수의 정신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 고흐의 삶을 통찰한 장 수녀는 “고흐는 낡은 구두를 통해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고 헌신한 후 생명마저 내어놓고 그 몸을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신 하느님의 모습,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고 설명했다.

봉쇄수도원에서 수행과 노동의 삶을 살고 있는 장 수녀는 그림들이 자신을 초월적 실재 앞으로 안내했다고 강조한다. 삶의 의미를 확장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해준 그림의 힘을 이 책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