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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묻는 복음선포의 의미 / 이미영

이미영(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1-10-05 수정일 2021-10-05 발행일 2021-10-10 제 326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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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D.P.’와 ‘오징어 게임’이 한창 인기입니다. ‘D.P.’는 군 복무 중 이탈한 탈영병을 체포하는 헌병대(Deserter Pursuit) 이야기이고, ‘오징어 게임’은 엄청난 빚에 시달리거나 당장 큰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1인당 1억 원씩 총 456억 원이라는 목숨 값을 걸고 생존게임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국내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면서 우리 문화 콘텐츠의 저력을 자랑스러워하는 기사가 쏟아지지만, 저는 이 드라마들이 생생하게 재현하는 한국 사회의 그늘을 부끄럽고 가슴 아프게 보았습니다.

두 드라마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계급화되고 불평등한 사회인지 폭로하며,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이 누군가의 ‘재미’이거나 어쩔 수 없는 ‘세상 질서’로 치부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실제 사건을 극화한 드라마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끔찍합니다. 2014년 발생한 ‘윤일병 사건’을 모티브로 한 ‘D.P.’는 분단국가에서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 남성들이 군대에서 어떤 일을 경험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라는 말과는 정반대로, 군복무가 사회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봉사하며 삶의 성장이 이뤄지는 경험이 아니라 개인의 인권과 존엄이 억압받고 유린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폭력과 억압에 순응하게 되고, 누군가의 고통을 방관하며, 폭력을 내면화하는 인간성 파괴의 경험이 군대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이 드라마는 그려냅니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은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발해 2009년 77일에 걸친 파업농성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모델로 한 인물입니다. 성실하게 일하던 평범한 가장이 일터에서 쫓겨난 뒤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경찰특공대의 폭력적 진압이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는지를 보여주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을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킵니다.

‘D.P.’에서는 강인함을 요구하는 군대라는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마음 여리고 온순한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 심각한 인권유린과 폭력의 희생자가 됩니다. 누군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오징어 게임’에서는 힘없는 노인과 여성, 이주노동자가 쓸모없는 존재처럼 치부됩니다. 힘과 권력, 재산이 많은 이들은 약자를 조롱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도덕적 무감각함으로 인간성을 상실하고, 가진 것 없고 약한 이들은 폭력적인 횡포에 인간으로서 존엄과 생명을 잃고 비인간화된 사회, 이것이 두 드라마가 드러낸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입니다.

인간성을 잃거나 파괴하는 ‘죽음의 문화’ 속에서 한국은 3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자살공화국’의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보고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하루 평균 36.1명꼴로 자살했고, 특히 20대 사망자 중에서는 자살로 죽은 이가 54.4%였다고 합니다. 팬데믹으로 강력한 거리 두기 상황이 계속 연장되면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지인이 저에게 “이렇게 자살자가 늘어나는데, 한국천주교회가 나서서 그들의 어려움에 다가가거나 도와주려는 어떤 노력을 하는 게 있나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선뜻 이렇다 할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곳이든 지역마다 성당이나 교회가 있는데, 이렇게 죽음의 위기 앞에 선 이들이 성당이나 교회에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의 복음 선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구원’을 뜻하는 라틴어 명사 ‘salus’는 건강, 안녕, 평안, 생명 등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라는 초대를 넘어서서, 온 세상 모든 이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평안하게,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인간다운 존엄과 온전한 생명을 살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라는 사명이 아닐까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영(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