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19)용문성당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10-05 수정일 2021-10-05 발행일 2021-10-10 제 326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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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십자가’ 눈길 끄는 언덕 위 우뚝 선 성당
1908년 교구 5번째 본당 설립
경기 동부 복음 전파의 거점
순례자 위한 정비 작업 진행 중 

용문성당 전경. 노란색 십자가가 눈길을 끈다.

경기도 양평 용문에 들어서 용문로 방면 회전교차로 9시 방향에 다다르면, 세 개의 짙은 노란색 십자가가 눈에 띈다. 지역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우뚝 선 제2대리구 용문성당(주임 한승주 신부)이다. 두 개 첨탑과 중앙 지붕에 설치된 십자가는 그 노란빛으로 고전 양식을 적용한 건축 형태에 어우러져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본당 심벌마크도 이 외관 형태를 따랐다. 세 개 십자가 중 가운데 십자가는 아기 예수를 상징한다. 그 위에는 용문 지역 상징인 은행나무를 형상화했다. 은행나무처럼 공동체 가운데 주님을 모시고 그분을 통한 건실한 교회 나무로 100년, 200년, 500년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나라를 무한히 펼쳐나가겠다는 표현이다. 성당 건물의 십자가 색깔도 가을 은행잎의 노란색에서 비롯됐다.

용문본당 심벌마크.

성당 입구 표지석과 평화의 예수상.

정문으로 진입해 ‘용문성당’ 표지석과 ‘어서 오라’고 팔을 벌려 환영해 주시는 듯한 평화의 예수상을 만난 후 계단을 오르면 성당 입구에 다다른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로비에 ‘수원교구 순례사적지 용문성당 역사전시관’이 꾸며져 있다. 본당 역대신부, 출신 성직자와 수도자 사진에 이어 용문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한 과정, 신앙의 요람으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 지역 복음화 거점으로 성장한 내용들이 한쪽 벽면에 병풍처럼 잘 정리돼 있다. 1908년 설립돼 100여 년 자취를 간직한 본당의 유구한 역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본당은 경기 동부지역 복음전파의 거점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이후 많은 신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각지로 흩어졌고, 그 결과 황해도 동부, 경기도 동부, 강원도 서부 등 박해가 덜하고 근접하기 어려운 산골지역에 신앙공동체들이 새롭게 자리 잡았다. 1876년 선교사들이 재입국한 후에는 공동체(공소)가 재건됐다.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양근, 지평(현재 양평 지역) 등지에 교우촌이 들어서게 된 배경이다. 1891년 10월 1일 뮈텔 주교 일기를 보면, 용문면 퇴치미(덕촌리) 교우촌은 50여 가구에 신자 수 약 200여 명의 큰 공소였다고 나온다.

교구 교세 통계표를 보면 1904년 양평지역에 퇴치미, 오리골, 능말, 갈고개, 무너미 등 5개 공소에 366명 신자가 교우촌을 형성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뮈텔 주교는 1908년 3월 5일 조제 요셉 신부를 양근 및 인근 지역 담당 신부로 임명하고 퇴치미 공소에 상주시켰다. 용문본당의 탄생이다.

초기 신앙 선조였던 권철신 암브로시오와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살던 지역, 박해 시대에는 40여 명 순교자가 났고, 박해를 피해 용문산 깊은 산중으로 와서 옹기를 구우며 신앙을 지켜온 터전에 설립된 본당이었다. 경기도 팔당, 양수, 양근, 여주, 이천 지역 등이 속하는 남한강 권역에서 설립된 교구 다섯 번째 본당이기도 했다.

설립 후 복음 전파는 활발히 진행됐다. 1915년에는 퇴치미에서 마내(마룡리)로 이전해 마내성당으로 불리기도 했다. 1916년에는 양평지역을 비롯해 동두천까지 34개 공소에서 신자 2396명을 사목할 만큼 활성화됐다. 4대 손성재 신부는 1912년부터 16년간 용문본당에서 사목하며 본당이 양평지역 으뜸 성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했다.

1943년 양평본당 설립 이후 여러 차례 공소와 본당을 오갔던 용문본당은 1967년 공소에서 본당으로 부활했다. 사목 내실화를 위해 노력하며 신자 재교육 및 재도약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도약을 시도한 본당은 성당 건립을 추진해 1992년 현재의 성당을 봉헌했다.

2008년에는 본당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평화의 예수상 제막식 및 축복식을 거행했다.

옹기를 구우며 신앙생활을 했던 선배 신앙인들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집에서 쓰는 항아리를 가져와 전시해 놓았다.

옹기가마 형태의 기도방 입구.

본당은 교구 순례사적지 선포에 앞서 지난해부터 100년 역사를 지닌 성당에 걸맞은 순례 성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교육관과 사제관 증축 및 성당동 1층 환경개선 공사를 실시한 것을 비롯, 십자가의 길 동산, 대형 십자가, 묵주기도의 길 등을 조성했다.

평화의 예수상에서 시작되는 묵주기도의 길은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주보성인인 본당으로서 더욱 성모 마리아를 본받고 그분께 나아가기 위한 장소다. 길 마지막에서는 성모 동굴과 선조들이 옹기를 구우며 신앙을 지켰던 것을 묵상하는 옹기가마 형태의 기도방을 마주할 수 있다. 성모동산 왼편 십자가의 길 방향에 신자들이 가져다 놓은 항아리들도 특별하다. 성당 오른편 지역이 예전의 옹기 굽던 자리였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선배 신앙인들을 기억하는 의미다. 각 항아리에는 이전의 공소 이름이 적혀있다. 2020년 11월 29일 교구 순례사적지 성당 선포는 이런 본당의 노력을 북돋우는 전기가 됐다.

주임 한승주 신부는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 등 신앙 선조들이 남긴 것은 세속을 거슬러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하다”며 “희년을 보내며 신앙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자”고 말했다. 이어 “순례사적지에 맞갖은 성당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정비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라며 “매월 순례자 미사 봉헌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