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설마 신앙’을 아시나요 / 은주연

은주연(엘리사벳·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
입력일 2021-10-05 수정일 2021-10-05 발행일 2021-10-10 제 326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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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러 가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유독 눈에 들어오는 백신 사고에 관한 뉴스 탓에 걱정과 두려움, 우울감이 범벅된 기분으로 아침을 맞았다. 괜찮을 거라는 가족들의 걱정을 뚫고 유난히 밝은 둘째 에밀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엄마! 걱정하지 마~ 하느님이 설마~.”

에밀리아의 세상 밝은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얼어있던 마음이 살며시 녹았다. 내 걱정을 단숨에 날려준 에밀리아의 ‘설마’는 이렇게 나에게 늘 만병통치약이다.

우리 둘째는 정말 겁이 많은 아이였다. 부끄러움도 많아서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동네에서 어른들을 만나면 늘 내 뒤로 숨곤 했던 아이.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것처럼 얼굴을 돌리고 내 옷자락만 꼭 잡고 있는 아이가 많이 답답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런 아이를 3학년 때인가, 처음으로 피아노 콩쿠르에 내보냈는데 역시나 많이 긴장한 태가 역력했다. 아주 작은 콩쿠르이니 겁을 낼 필요가 전혀 없다고,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 주어도 하얗게 질린 얼굴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대기실까지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언제까지나 엄마가 옆에 있어줄 수는 없을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서성이고 있는데, 어느덧 번호가 호명되어 대기실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어쩌겠나, 나는 대기실로 들어가는 둘째 아이 어깨를 살며시 안아주며 말해주었다.

“여기, 네 등 뒤에 지금부터 예수님이 함께 계실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그렇게 들여보내놓고 반신반의했던 것은 나였고, 오히려 에밀리아는 무대 위에서 여유로워 보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예수님이 자기 뒤에서 함께해 주셔서 무대가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찐하게 예수님을 체험한 덕에 에밀리아에게는 ‘하느님이 설마~’하는 ‘설마 신앙’이 생긴 것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잘 안 된 것은 내 탓, 잘 된 것은 하느님 덕’이라는 공식이 생긴 것도 ‘하느님께서 설마 나에게 나쁜 것을 주시겠나’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솔직히 둘째의 이런 믿음이 너무나 고맙고 예쁘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늘 좋은 것만 주신다는 믿음, 그 아름다운 믿음을 보여주는 에밀리아를 따라 이제 나도 한번 외쳐봐야 할 것 같다.

“하느님이 설마~”

은주연(엘리사벳·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