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87) 부부로부터 시작되는 세상의 변화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입력일 2021-09-28 수정일 2021-09-28 발행일 2021-10-03 제 3263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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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작은 교회이자 하느님 사랑 드러내는 성사

“우리 애들은 참 착해,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더라고.”

손위 동서와 통화 중에 형님이 한 이야기이다. 아이들의 친가 쪽으로 서른 살인 프란치스코부터 초등학교 6학년인 체칠리아까지 아이들은 모두 열 명이다. 그중 우리 집 첫째 아들 프란치스코와 형님네 맏딸 플로라가 동갑이고 우리 집 둘째 아들 엘리야와 동서네 딸 안젤라, 형님네 아들 다니엘이 동갑이다.

이렇게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이 명절에 모여 놀다 보면 한 번쯤 싸워서 누구는 울고 누구는 맞고 싸우는 일이 있을 법도 한데 30년 동안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면 그 부모들의 관계도 편안할 리 없었을 것이니 참 감사한 일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모두 할아버지 댁에 모여 사촌 형제들을 만나 맛난 음식을 먹고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기대를 한다. 이번 명절에는 코로나19로 그렇게 모일 수 없으니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떠들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다.

아이들이 우애한 것은 그 부모들의 영향이 클 것이다. 남편의 형제들은 서로 흉이나 허물없이 잘 지내고 동서끼리도 서로 얼굴 붉힌 일이 없었다. 이런 어른들의 모습을 본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서로 좋아하고 잘 지내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대학 입시를 앞두면 명절에 참석 안 한다는 이야기를 이따금 듣게 되는데 우리 아이들은 입시 때문에 명절 참석을 건너뛴 적도 없었다. 시어머니가 오라고 강요하시지도 않는데 학원 다녀와서 늦게라도 와서 밥 한 끼라도 먹고 갔다. 아이들은 그 밥을 먹고 힘을 받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들이 모두 격려해 주고 지지해 주니 밥이 주는 그 이상의 에너지를 받아 가는 것 같다.

아이들이 이렇게 잘 자라고 서로 우애하는 것은 한 가정의 문화와 가치관의 영향도 큰 것 같다. 만약 우리 부부가 아이들의 대학 입시, 또는 사회적인 성공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명절에 시댁에 모여 노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도 아이 입시를 핑계로 한 번쯤 건너뛰는 것을 당연히 여겼을 것이고 아이들도 사촌을 만나는 일보다 입시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점점 그 만남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마음이 멀어졌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대학 수준으로 서로 비교하고 비교당하고 열등감과 우월감이 서로의 관계를 해치고 상처받게 되니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 될 것이다. 형제 중에 그런 가치관을 가진 가정이 하나도 없는 것이 너무 다행이고 신기할 정도다. 이건 아마도 어머니와 아버지 영향이 클 것이다. 두 분은 하느님의 뜻대로 자녀들을 키우되 최선을 다하신 분들이다. 세상의 가치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자녀들을 키우셔서인지 다섯 남매의 가정에 관한 가치관이 모두 비슷하다.

나는 한 부부의 가치관이 미치는 파급력을 우리 가정에서 본다. 부모님이 다섯 자녀를 경쟁시키면서 키우셨다면 지금처럼 서로 우애롭지 못했을 것이고 그들의 자녀들도 서로 경쟁하느라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 가치관은 우리 아이들의 자녀들에게 이어져 나갈 것이니 한 부부의 삶이 그들만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ME는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부부는 작은 교회이고 하느님의 성사라고 한다. 한 부부가 하느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 슬로건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뛰었다. 부부는 그저 두 사람이 좋아서 만나 가정을 이루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작이라는 말은, 우리 부부가 서로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노력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키는 부부들이 더 많아져야 세상이 좀 더 빨리 변화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늘 모든 부부가 ME 운동에 동참하시기를 권하고 있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