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사랑의 부활 / 송동균

송동균(바오로) 시인
입력일 2021-09-28 수정일 2021-09-28 발행일 2021-10-03 제 326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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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까지. 우리의 삶에는 늘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 사랑이 만약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랑이 없다면 해를 잃고 달빛 없는 허허벌판 사막이나 헤매는 고독을 씹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눈물도 아픔도 없이 가슴과 가슴들은 겨울 가시덤불과도 같은 앙상하게 파리한 눈매로 다만 먹기 위해 사는 하루살이 인간이 됐어야 할 것이다. 나라를 잃은 슬픔도 민족이 흩어진 아픔도 고향의 그리움도 가족의 따스한 품안도 느낄 수 없이 그저 남의 가슴 할퀴며 짓밟고 사는 삭막한 삶이 지속됐을 것이다. 윤리야 있을 수도 있을 필요도 없고 존경심은 땅에 떨어질 것이며 소박하고 아련한 꿈 조각 같은 것은 아예 간직해 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사랑이 너무 메말랐다고들 한다. 그러기에 윤리는 땅에 떨어지고 사회에 신뢰성이 없어졌다. 사람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며 기다림 속에 사는 행복감보다는 애인의 마음조차 헤아릴 길 없는, 그리고 살기 위해선 순수한 우정(友情)조차 마음속 가늠할 길 없는 불신(不信)이 팽배한 세상이다. 정치인, 경제인 심지어 종교인, 문화단(文化團)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함부로 정(情)을 사고팔고 하는 불신시대가 돼가고 있다. 거리는 이제 마음대로 나다닐 수조차 없이 됐다. 불량배들은 대낮에도 칼을 휘두르고 흉흉한 사건들이 하루가 멀게 벌어지고 있다. 이것들을 어찌 정치의 혼란으로만 돌리겠는가? 어찌 또 경제의 불안정으로만 돌리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순수한 사랑을 거칠게 남용해 왔다. 민주주의를 남용하듯이 사랑을 그렇게 함부로 남용해 온 탓인 것이다. 일시적 쾌감을 얻는 충동적인 사랑, 남을 해쳐도 제 얻을 것만 얻으면, 그러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파렴치범이 이 세상엔 난무(亂舞)하고 있다. 이 같은 불안한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숨돌려 시급히 안정을 되찾아야만 되겠다. 성적(性的) 충족을 위한 거친 사랑이 아니라 눈매를 통해 맑게 흐르는 별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하는 이 가슴에 거짓 없는 자기희생을 묻어주는 연모의 정(情)을 기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이다.

나는 동서문화교류의 목적을 띄고 여러 문인들과 같이 소련, 헝가리, 유고 등 공산권을 한 달 가까이 방문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발견한 놀라운 점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폐쇄 공산국가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애정행각을 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순수하고 절실한 사랑이 서로의 가슴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고 자유세계 속 야욕을 불태우는 사랑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가 생각했다. 그들의 것은 정말 거짓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그들의 사랑만은 속박받지 않고 천사의 입김이 불어 넣어진 유곡의 바람과도 같은 것이라 느껴졌다. 내가 얻는 쾌감 충족보다는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를 즐겨주는 행복감을 갖게 하는 아련하고 절실한 맑은 사랑! 그 사랑이 그리운 것이다.

수유리(水踰里)의 밤이 깊어지니 수선스럽던 발자국들도 골목 안으로 스며들고 구곡(九曲)을 씻어내린 맑은 정기만이 여울목 가득 촛불을 밝힌다. 음악은 더욱 저음으로 흐르고 순수를 태우다 떠나는 연인의 발걸음을 귀여운 소녀의 샛별 같은 눈매가 가을 낙엽지는 소리같이 말없이 토막내고 있다.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며 사랑의 부활을 꿈꿔본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송동균(바오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