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18)하우현성당

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1-09-28 수정일 2021-09-28 발행일 2021-10-03 제 326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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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처럼 굳건한 교우촌 신앙 역사 이어가는 곳
교구 세 번째 본당으로 승격
안양·안산 등지에 복음 전파
문맹퇴치 등 지역민 위해 노력

하우현성당 전경. 성당은 1965년 당시 주임신부였던 김영근 신부가 미군 부대로부터 건축 자재를 원조 받아 신축했다.

경기도 의왕시 ‘하우현’이라 불리는 지역에 교우촌이 있었다. 이 지역에 언제부터 교우촌이 형성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의 복사였던 김기호(요한·1824~1903) 하우현본당 초대 전교회장이 1901년 펴낸 「봉교자술」에 따르면 “하우현에는 군난을 전후하여 가난한 교우들이 모여 살았다”고 기록돼있다. 이를 볼 때 하우현에는 박해를 전후해 신자들이 모여 살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해 11월 29일 교구 순례사적지로 선포된 제2대리구 하우현본당(주임 윤영민 신부)은 지역적으로 한양에 인접하면서 청계산, 광교산 등 높은 산들과 깊은 계곡, 울창한 수목으로 둘러싸여 신자들이 숨어 살기에 최적인 장소였다. 이는 교우촌이 형성돼 한양과 용인·수원 등 인근 지역 신자들의 전교를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하우현 교우촌에서는 여러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신유박해 때는 광주 의일리에 살던 한덕운(토마스) 복자가 남한산성에서 순교했고, 1845년에는 이 지역에 거주하던 김준원(아니체토)이, 병인박해 때는 박해자들을 피해 인근 둔토리 동굴에서 숨어 지내며 하우현 신자들을 돌보던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가 체포돼 순교했다.

하우현은 1884년 공소가 설립된 뒤 1900년 교구 내 세 번째 본당으로 승격돼 샤플랭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공소 시절부터 안양, 안산, 의왕, 군포, 시흥 등지에 복음을 전하는 중심지 역할을 한 하우현본당은, 승격 후에는 16개 공소를 포함해 광주·용인·과천 등지를 관할했다. 이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소와 본당을 오간 하우현본당은 1978년 다시 본당으로 승격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본당과 공소를 오간 상황에도 김기호(요한) 초대 전교회장을 비롯한 신자들은 신앙을 향한 변함없는 마음으로 이곳을 지켜왔다. 1894년 세워져 1900년 본당 승격 후 성당으로 사용된 공소 강당은 본당 2대 주임 알렉스 신부와 신자들이 모금한 1500냥으로 신축됐다. 본당은 일제시대에 애민 정신을 발휘, 1920년 4년제 초등과정의 경애강습소를 열어 문맹을 퇴치하는 교육 사업을 펼쳐왔다. 이러한 신자들의 열정과 희생은 독일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 아빠스(1870~1956)가 1925년 한국을 방문했던 당시를 기록한 저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도 잘 나타난다.

“하우현 신자들은 일찍이 신앙을 위해 전 재산을 버렸다. 사랑하는 이들은 망나니의 칼에 피를 뿜었다. 쓰라린 빈곤 속에서도 신앙은 그들을 둘러싼 험준한 바위처럼 굳건했다.… 뜨거운 믿음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저 눈동자들! 이 산골짜기에서 신앙을 구했고 신앙은 그들의 전부였으니, 그들이 이 산골짜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수원교구 ‘순례사적지’ 선포 교령에서 이용훈 주교는 하우현본당이 “박해를 피해 많은 신앙 선조들이 은신하며 신앙의 뿌리를 내린 곳이자 성당을 중심으로 문맹퇴치와 신개화 사상교육을 통해 지역 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교의 기쁨과 영광을 전했다”며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을 실현하고, 외국 선교 사제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가난하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서로 함께 나누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신앙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전수함으로써 120년에 걸쳐 풍성한 천주교 신앙 공동체로 성장했다”고 선포 이유를 밝혔다.

하우현본당 사제관. 한불절충양식으로 건립된 가치를 인정받아 경기도 지정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됐다.

지난해 120주년을 맞은 하우현본당은 그 마음을 이어받아 성역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4월 입구에 세운 복자 한덕운(토마스) 동상을 비롯해 사제관 옆 성당에 5월 1일 부터 주보성인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 성당과 십자가의 길을 지나면 나오는 본당 성모동산 중앙에 한 비석이 눈에 띈다. 이는 김기호(요한) 초대 전교회장의 유해가 묻힌 곳을 알리는 기념비로, 성모동산을 방문하는 이들이 본당의 기틀을 다졌던 김 회장을 비롯한 신앙선조들의 노력을 기억하게 해 보는 이들을 숙연케 한다.

변함없이 신자들을 맞이하는 장소도 있다. 초대주임 샤플랭 신부가 1906년 서양식 석조에 한국 전통 기와를 올린 한불절충양식으로 건립한 사제관이다. 경기도 지정기념물 제176호 지정된 이 건물은 처음 건축된 당시 모습 그대로 신자들을 반기고 있다.

본당은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신자들을 향한 배려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최대한 많은 신자들이 미사를 참례할 수 있도록 야외 임시성전을 마련했다. 또한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로 윤영민 주임신부 주례로 매일 오전 10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하우현본당 주임 윤영민 신부는 “하우현본당은 120년 넘게 신앙선조들이 신앙을 지키려 일궈온 터전이자 신앙을 전파하기 위한 활동지”라며 “이러한 본당의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고 교구 사적지 제2호 성당 지정에 맞춰 앞으로도 하느님의 종 이조여 요셉, 서태순 아우구스티노 및 3대 주임 페랭 신부 동상 제작을 비롯해 본당 신앙 선조들의 활동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본받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의 031-426-8921 하우현본당 사무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