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복사가 된 에밀리아 / 은주연

은주연(엘리사벳·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
입력일 2021-09-14 수정일 2021-09-14 발행일 2021-09-19 제 326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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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시작될 무렵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시기였다. 둘째 아이가 첫영성체를 받고 드디어 ‘복사’가 된 때였기 때문이었다. 서른 번의 미사 참례와 복사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처음으로 복사를 섰던 미사. 그 복된 날을 뒤로 하고 바로 그 다음 주부터 미사가 중단되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갈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거리두기’로 2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 언제쯤 ‘복사’라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참으로 기약이 없다.

아이가 복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건, 우연히 마주친 교리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첫째 아이가 첫영성체 후 성당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둘째 아이에게도 그다지 큰 계획을 세우지 않았었다.

그런데 첫영성체 교육을 위한 평일 미사에 참례하고 성당을 나오던 날 우연히 마주친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성모동산에서 기도하고 있는 에밀리아(둘째의 본명)를 보신 교리 선생님의 “복사를 하면 좋겠다”라는 그 한마디에 나와 아이의 신앙생활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것이다.

‘복사’라니. 평소 남의 일처럼 보였던 그 자리에 에밀리아를 대입해 보는 건 쉬운 상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복사가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이던가. 새벽어둠과 겨울바람을 뚫고 새벽 미사 서른 번을 채워야 비로소 복사를 설 수 있는 자격이 생기니, 웬만한 체력이나 정신력 없이 신앙만 가지고는 안 될 일이었다.

에밀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참 많이 약한 아이였다. 또래보다 두 뼘이나 작은 체구에 약한 체력까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하루에 두 가지 스케줄을 소화하지 못하는 약하디 약한 아이. 그런 아이에게 새벽 미사 서른 번을 권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기적은 이런 것인지, 아이는 ‘쿨’하게 새벽 미사 서른 번을 받아들였다.

공평하신 하느님은 에밀리아에게 약한 몸을 주신 대신 기도해 주시는 많은 사람들을 주셨고, 그 덕분에 늘 하느님과 친밀했던 아이는 하느님께 대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새벽 미사와 학교생활을 병행할 수 없는 체력인지라 그 한 달 동안 학교를 밥 먹듯 빠져야 했지만, 뜻하지 않게 담임선생님의 응원까지 받는 아이를 보며 나는 잠언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마음속에 많은 계획이 들어 있어도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뜻뿐이다.”(잠언 19,21)

아직 자유롭게 미사를 드리지는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또 언제 어떤 방법으로 에밀리아를 불러주실지 모르겠다. 잠언 말씀처럼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자세와 믿음만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은주연(엘리사벳·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