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창작의 고통 / 함상혁 신부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
입력일 2021-09-07 수정일 2021-09-07 발행일 2021-09-12 제 326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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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주 부지런한 성격은 아니지만, 최소한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신문사에서 부탁받은 원고도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 글을 쓸 때에는 그동안의 사제생활을 정리해 보는 성찰과 묵상의 계기가 되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5회차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6회차 정도가 되니 슬슬 힘들어집니다. 소위 밑천이 떨어진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3년 정도 지나면 힘이 듭니다. 강론할 밑천이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저는 강론은 반찬과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침에 먹은 반찬을 저녁에 그대로 준비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듯이 강론도 늘 새롭게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3년 정도 지나면 이제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전에 했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합니다. 지금이 그 마음입니다. 가톨릭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밀알 하나’ 원고를 써나가면서 점점 밑천이 떨어져 가는 불안이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약 20여 년 전 뉴스가 생각났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문화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정말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지금의 BTS도 유명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을 당시에는 정말 온 거리에서 ‘난 알아요’ 노래만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새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매진이 되고 정말 엄청난 인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해 난리가 납니다. 그리고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 유명한 말을 합니다.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이 너무 힘들었습니다”라고. 저도 9회차가 되니 글을 쓰는 게 힘들어집니다. 이런 것이 창작의 고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작이라 함은 없는 것을 새로 만든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제가 쓴 글이 다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뜻인가요? 저는 지금까지 잘 포장된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십계명 중 여덟 번째 계명인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이 계명을 잘 지키고 살아왔는가 반성해 봅니다. 그러고 보면 늘 어느 정도의 포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글 옆의 얼굴 사진도 현대과학기술-포*샵의 힘을 좀 빌렸습니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포장이 있었습니다. 강론 때의 말 따로, 실제 생활의 행동 따로 이중인격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 집회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굽어보시고 사람의 행위를 낱낱이 아신다.”(집회 15,19) 욥기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사람을 속이듯 그분을 속일 수 있겠나?”(욥 13,9) 지금까지 하느님도 속일 수 있다는 간 큰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하루입니다.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