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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가난 = 행복? / 함상혁 신부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
입력일 2021-08-31 수정일 2021-08-31 발행일 2021-09-05 제 326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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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산상수훈 혹은 진복팔단이라고 불리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행복의 8가지 조건 중 첫 번째는 가난입니다. 여기에서 가난은 영적인 가난과 물질적인 가난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무소유의 개념과 비슷하면서도 좀 더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불교의 무소유가 집착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즉 자유를 얻기 위한 방법이라면 가톨릭의 가난은 내가 아닌 하느님으로 충만해 있는 상태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돈이면 모든 것이 된다고 믿는 물질만능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가르침이 설득력이 있을까요? 아일랜드 출신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When I was young I thought that money wa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now that I am old I know that it is. (젊을 때는 인생에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알았다.)

가난에 관한 강론을 할 때면 세상의 재물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하느님만 바라보며 가난하게 살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재물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갈 일이 있었습니다.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거리라 버스를 타고 가야지 했는데, 버스비가 얼마인지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다닐 일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10여 년 전쯤 모 국회의원이 “버스비가 70원 정도 하지 않나요?”라는 대답으로 곤혹을 치렀는데 저도 비슷한 겁니다. 늘 자가용을 타고 다니니 버스비를 알 수가 없지요. (이곳 안성에는 지하철이 없어서 지하철 요금도 모릅니다.) 몇 년 전 알고 지내던 수녀님들께 딸기 몇 박스를 가져다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딸기를 본 수녀님들이 “얼마 만에 딸기를 먹는지 모르겠네요. 신부님, 감사합니다”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인데 말입니다. 많은 신자가 오해하는(?) 것처럼 저는 정말 가난한 것일까요? 그러고 보면 참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우선 내 집 마련 걱정이 없습니다. 가는 성당마다 사제관은 있으니까요. 어떤 청년은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들은 부자 아닌가요? 그런데 왜 가난한 척하시나요?”

글을 쓰다 보니 그동안 “가난한 사람이 행복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제가 가난하게 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회개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가난하게 살지 못하는 저는 죄인입니다. 죄인인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