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82) 하늘의 악보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입력일 2021-08-17 수정일 2021-08-17 발행일 2021-08-22 제 325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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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형제애 실현해야 하는 정치야말로 ‘사랑 중의 사랑’

무지개색을 모두 합하면 무슨 색이 나올까?

모든 빛을 합성하면 흰빛이 되고 모든 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된다고 배운 기억이 난다. 그래서 포콜라레운동에서는 ‘정치, 공공 행정 및 세계성 분야’에 대한 삶을 검은색으로 표현한다. 왜냐하면 정치야말로 인간의 삶을 모두 아우를 뿐 아니라, 공공선을 제도적으로 펼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인이나 행정가는 물론 시민 개개인도 자신이 정치의 주체임을 인식해 투표 참여나 공익을 위한 민원 등에 적극성을 띠도록 격려하고 있다.

끼아라 루빅은 1996년 이탈리아 정치인들을 만났을 때, 정치 일선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고는, 보편 형제애를 정치에 접목해야 함을 설파하면서 정치야말로 ‘사랑 중의 사랑’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각자가 택한 정치 노선을 따르더라도 모든 이와 친교의 관계를 건설하고, 공공선을 목표로 하며,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을 기준으로 정책을 결정함으로써, 인류의 삶에 이바지할 것을 당부했다. 이를 계기로 ‘일치를 위한 정치 운동’이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이 취지에 동의하는 정치인들을 도와 출범식을 가졌다. 이후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결실들도 있었다.

사실 이런 흐름을 알기 전에는 나 같은 일반인은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뿐 아니라 언론에 비친 정치계의 혼탁은 무관심과 거부감을 불러올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정치가 사랑 중의 사랑이라니! 더구나 우리 모두가 그 사랑이 실현되도록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니….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쉽진 않지만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도 멈추어야 했다. 오히려 그들이 올바른 마음으로 정의를 선택하는 용기를 지니도록 기도해야 하고, 사회 현상에도 늘 깨어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마침 몇 해 전, 우리나라 ‘일치를 위한 정치·사회 포럼’에서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일치를 위한 정치 운동’에서는 정치 현실의 문제뿐 아니라 포콜라레 영성에 대해서도 다루었는데, 그날의 주제가 ‘마리아’였다. 정치인들의 모임에서, 종교도 다양한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그런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콜라레 영성은 항상 경험담으로 삶을 나누곤 하기에 ‘마리아’라는 주제도 우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 냈는지를 보여 주어야 했다. 그래서 말년에 알츠하이머병을 앓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성모님을 기억하며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 살고자 노력했다는 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진행자가 그런 부탁을 해 온 것이다. 국회의원들과 사회 저명인사들 앞에서 대단하지도 않은 나의 이야기를 펼쳐야 한다니…. 아무튼 나름 영성을 산 경험이니 우선 원고를 보냈다. 매번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때는 표현 하나하나가 더욱 조심스러웠으나 그렇게 하는 과정도 그들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난생처음 국회의사당에 들어서서 의원회관에 도착하니 정말 언론으로만 대하던 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발표를 끝낸 후 휴식 시간에 한 국회의원은 나에게 다가와 자신이 발의했던 치매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입법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는데, 참으로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언론에서 접한 면들 외에도 정치인으로서 각자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성모님의 ‘마니피캇’은 그 당시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참으로 혁신 그 자체다. 바로 하느님의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기를 염원하신 것이니 마니피캇이야말로 예수님의 혁명을 위한 전주곡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를 보면 때로는 우리의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간 듯 보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우리 삶으로 마니피캇을 계속 노래하라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라고, 하늘에 오르신 성모님께서 그 하늘의 악보를 자꾸 펼쳐 보이시는 것만 같다.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