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어쩌다 보니 / 함상혁 신부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
입력일 2021-08-10 수정일 2021-08-10 발행일 2021-08-15 제 325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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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조금 허무하기도 하고 약간 운명에 순응하는 듯한 느낌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제목을 정한 것은 지난해에 있었던 한 가지 사건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여름 신앙학교를 개최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있는 공도본당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참 훌륭합니다.(결국 자랑이지요^^) 비대면으로 신앙학교를 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말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해 보라”고 했더니,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잘 하는 것입니다.

그 프로그램 중 하나가 신부님과의 대화, 신부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초등부 아이들을 단체 ‘카톡’방에 초대해서 저한테 질문을 하면 저는 실시간으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부님은 쉬는 때는 뭐 하시나요?”하고 물으면, “소파에 누워 있어요”라고 답하는 겁니다. 약 20명 정도의 아이들과 30분 정도 카톡 대화를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거짓말은 못 하지만 동심을 깨지 않기 위해 약간의 강도 조절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제일 궁금해 하는 점은 비슷했습니다. “신부님 되면 힘드나요?” 저의 대답은 “생각보단 편해요^^.” “신부님 되려면 공부를 잘 해야 되나요?” “네. 전 전교 1등 한 적 있어요. 꿈에서.” 이렇게 대답을 잘 하던 중 한 가지 질문에서 답이 막혔습니다. “신부님은 왜 신부님이 되셨나요?” 이 내용은 신학생 때부터 아니, 예비신학생 때부터 참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방학 때 본당에 가면 꼭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왜 신부님이 되려고 하셨나요?”라고. 아마도 힘든 사제의 길을 가는 모습이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여서 물어보셨나 봅니다. 순수한 초등부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대답은 해야겠는데 멋진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이렇게 여섯 글자를 적었습니다. “어쩌다 보니까.” 잠시 카톡방에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참 부족하고 바보 같은 답이었습니다. 왜 신부님이 되었는지 물어보는데 “어쩌다 보니까”라는 대답을 하다니요.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예레 1,5)라는 말씀을 믿고 저를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저는 아직도 부르심에 대한 믿음이 완성되지 않았나 봅니다. 제가 사제가 된 것이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가정방문을 갔을 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남편하고 왜 결혼하셨나요?” 그분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신부님, 그런 것 좀 자세하게 물어보지 마세요.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됐어요.”

여러분들은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나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마음이 바뀌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