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기억만으로 살아도 괜찮아… / 박민규 기자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1-08-10 수정일 2021-08-10 발행일 2021-08-15 제 325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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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다 하느님을 만나다’ 취재를 위해 칼레 신부(1833~1884)와 박상근(마티아·1836~1866) 복자가 박해를 피해 다녔던 ‘우정의 길’이라 부르는 백두대간 능선을 걸었다.

병인박해 당시 문경 일대에서 은신 중이던 칼레 신부를 피신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길을 나선 박상근 복자는 험한 산길을 헤치며 길을 내다 탈진에 이르렀다. 이를 본 칼레 신부는 되돌아가라고 명령하며 둘은 눈물로 이별을 고한다. 되돌아간 복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교하고, 칼레 신부는 본국 프랑스로 돌아가서도 선종하는 순간까지 복자와의 우정을 기억했다.

우리는 우정을 말할 때 흔히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 함께 웃어주고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둘은 함께한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고 헤어진 후에는 더 이상 만날 수도 없는 사이였다. 마지막을 함께할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보내야할 때 보낼 줄 알았고, 떠나야 될 때 떠날 줄 알았다.

‘기억만으로 살아도 괜찮아’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만남의 시간과 물리적 거리도 중요하지만 둘의 우정처럼 결국 우리는 기억으로 산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라는 말씀을 남긴 그리스도를 따라 교회 역시 성사생활에서 기억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믿음을 간직한 기억은 곧 희망으로 이어져 진실한 기도가 된다.

‘기억만으로 살아도 괜찮아…’ 대면 만남이 제한된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이는 단지 위로의 노랫말을 넘어 삶을 희망으로 이끄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 아닐까.

박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