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81) 하느님과의 진솔한 대화, 기도

한준(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입력일 2021-08-10 수정일 2021-08-11 발행일 2021-08-15 제 325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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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참 좋으신 분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예전 직장에서는 종종 기관장과 직원들 간에 대화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취지는 직원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조직의 문제점,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의사소통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발언을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조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꺼낸 이야기였겠지만, 혹시 기관장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지, 나중에 팀에 불이익으로 돌아오지 않을지 팀장인 나는 몹시 초조했었다.

다행히 팀원의 발언을 기관장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고, 원만하게 그 시간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 팀원을 불러 앞으로 그런 자리에서는 가급적 아무 말을 하지 말고, 필요하면 나에게 얘기하라고 가볍게 주의를 주었다. 형식적인 자리인데 속내를 드러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조직 생활에서 배운 일종의 노하우였다.

이후 한참이 지나 묵상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라는 구절에 마음이 머물게 되었다. 직장 경험 때문인지, 이때의 예수님 모습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예수님은 중간 관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왜 하느님께 그런 쓸데없는 기도를 했느냐고, 앞으로는 가려서 기도하라고, 잘못하면 하느님께 단죄 받을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야단치지 않으셨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한 거리감을 접어 두고 마음 편히 그분께 자신의 진심을 내어놓고, 무엇이든 청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정말 아빠, 아버지로 느끼고 진솔한 관계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아울러 하느님이 참 좋으신 분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전지전능한 조물주이자 심판자이기 전에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고, 우리 이야기를 경청하시며, 우리가 청하는 것을 들어주시고자 애쓰시는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내가 청하는 것을 정말 다 들어주실까 하는 의구심은 사그라들고, 애쓰시는 그분의 진심이 느껴져서 좋았다.

기도는 그분과의 진솔한 대화다.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소통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청하는 것만도 아니고, 나의 간절함과 열심히 함을 그분께 보여 주기 위한 것만도 아니다. 대화라는 것이 원래 그렇듯, 나에 대한 상대방의 사랑과 신뢰를 깊게 느끼게 되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상대에게 드러낼 수 있고, 상대방이 내게 건네는 말도 마음 깊이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기도 또한 나에 대한 하느님의 깊은 사랑과 연민을 깊게 느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분께 고백하며, 그분께서 내게 건네시는 말을 듣는 시간이다.

마치 엄마 품에 안겨 아이가 하루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듯,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를 살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그분께서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시는지 느껴볼 수 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시며 위로하시기도 하고, 상처 때문에 삐뚤어진 내가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라시기도 하며, 내 어둠을 직면하도록 아프게 초대하시기도 한다. 또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면서 자유로움으로 이끌기도 하신다. 그런 과정이 다 기도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겸손하게 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필요한 도움에 대해 아이가 그대로 말해 주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과 하느님 마음이 같을 것이다. 우리의 간절한 요청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어떻게든 돕고자 애쓰실 것이다. 그러면서도 엄마·아빠의 사랑과 신뢰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아 가길 바라듯,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사랑과 신뢰를 느끼며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랑의 삶을 살도록 애쓰기를 바라실 것 같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모든 것을 나누고 대화해 가길 바라신다. 하느님께 좋은 모습만 보여 드려야 한다는 건 우리의 착각이다. 서툴러도,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분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개방하고 나누길 바라시고, 그러면서 당신의 마음도 느껴 보기를 바라신다.

한준(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