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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그해… 여름… 1994년 / 장호원

장호원(요셉) 제1대리구 정자동주교좌본당
입력일 2021-07-27 수정일 2021-07-27 발행일 2021-08-01 제 325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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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면 항상 1994년 여름이 생각난다. 그해는 전국적으로 6월부터 비 한 방울 오지 않은 최악의 가뭄으로 기록되고 있었고, 500mL 생수병이 처음으로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전 국민을 더 힘들게 했다. 8월 1일 온도는 서울 기상관측 111년 만에 최고였다. 39.6℃ 그때 나는 서울의 한 성당 교사실에서 여름 캠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교사 30명이 3박4일 중고등부 여름 캠프를 두 달 넘게 준비 중이었다. 매일 오후 2시에 모여 묵주기도 5단으로 일정을 시작했던 우리는 캠프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좋은 날씨로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 기도보다 전 국민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지독한 가뭄을 끝낼 효자 태풍이 몰려온다고 했다. 태풍 상륙하는 날은 바로 캠프를 떠나는 날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캠프 오리엔테이션에 온 학생들에게 당시 본당 신학생은 외쳤다. “물 잔치를 벌입시다!!!”

1994년 여름캠프는 그렇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시작됐다. 버스에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사이 쏟아지는 비에 포장된 준비 물품들이 찢겨 나가는 등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해 여름 캠프는 완전 대성공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내 인생 최고의 캠프라고 생각한다. 물이 부족해 다른 팀들은 전혀 하지 못했던 수영장에서 우리는 수영도 할 수 있었고, 미니 올림픽, 야간추적놀이, 캠프파이어 등 야외활동 시간에는 신기하게도 비가 그쳤다. 살짝 오는 비를 맞으며 뛰노는 아이들은 이미 모든 것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아! 주님. 우리에게 최고의 날씨를 선물하셨구나.’ 교사들은 캠프가 끝나고 다들 펑펑 울었다. ‘너무 감격해서’, ‘너무 좋아서’였다. 그리고 캠프 다녀오면 벗어버리는 기념 티셔츠를 한동안 입고 성당에 나왔다. 아이들 역시 너무 재밌었다고 즐거워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을 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했던 내 젊은 날의 한순간 기억이다. 하지만 그냥 주신 것은 절대 아니다. 그 폭염 속에서, 그리고 전쟁의 두려움에서 교사들은 매일 성당에 모여 기도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프로그램 숙지하고, 준비 물품을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하느님을 느끼게 할 상상을 하며. 그랬기에 주님은 우리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때는 이 캠프 주제가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마냥 즐거워만 했던 것 같다.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께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리고 우리 자신이 얼마나 그리스도 말씀처럼 살고자 노력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말이다.

장호원(요셉) 제1대리구 정자동주교좌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