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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14)요당리성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07-20 수정일 2021-07-20 발행일 2021-07-25 제 325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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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위해 헌신했던 신앙선조들 숨결 고스란히
장주기 성인 일가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 탄생지
아늑하게 꾸며진 성지와 십자가의 길 조형물 인상적

요당리성지 전경. 대성당과 소성당, 순교자 묘지, 기도의 광장, 묵주기도 길, 십자가의 길 등이 아늑하게 꾸며져 있다.

장주기(요셉·1803~1866) 성인은 1866년 3월 1일 배론신학교에서 프루티에(J. A. C. Pourthie) 신부와 프티니콜라(M. A. Petitnicolas) 신부가 체포될 때 제천 산골로 피했다가 교우들 피해가 걱정돼 자수했다.

앞서 1855년 배론에 신학교가 설립될 때 자기 집을 임시 신학교로 내어주고 신학교 땅에 농사를 지으며 잔일을 도맡았던 그는 신학교 한문 교사 겸 선교사들의 집주인 역할을 했다.

서울로 압송될 때 성인은 역적모의한 죄인에게 씌우는 홍포를 썼지만, 표정은 인자했고 기쁨이 서려 있었다고 한다. 항상 “순교하여 예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던 원의가 이뤄질 날이 다가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해 3월 30일 군문효수형을 선고받고 충남 갈매못에서 다블뤼 주교 등 4명과 함께 참수됐다.

대성당 앞에 세워진 장주기 성인 흉상.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길 155 요당리성지(전담 강버들 신부)는 ‘장낙소’(張樂韶)로도 불리던 장주기 성인이 태어나 성장한 곳이다. 그의 6촌 형제 복자 장 토마스(1815~1866)와 또 현재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는 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중 하느님의 종 지 타대오(1819~1869)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순교자 림 베드로, 조명오(베드로), 홍원여(가를로)를 비롯해 장주기 성인의 친인척 장경언, 장치선, 장한여, 장 요한, 방씨 등이 이곳 출신 순교자로 추정된다.

1826년경 세례를 받은 장주기 성인은 이후 거의 모든 집안 식구를 천주교 신자로 개종시켰다. 그의 학식과 깊은 신심을 본 모방 신부는 조선에 입국하자마자 그를 회장에 임명했다.

복자 장 토마스는 장주기 성인과 함께 입교해 참된 신앙을 위해 이곳저곳 이사를 하며 교회 일을 도왔다. 그리고 진천 배티에 정착해 수계생활을 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잡혀 순교했다. 배교를 종용하는 관리에게 “만 번 죽어도 천주교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답한 것은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다.

요당리 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1801년 신유박해를 시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 신자들이 피난하며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교우촌은 양간공소라 불리며 갓등이(현재의 왕림)와 은이공소(현재의 양지)와 연계돼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했다.

이처럼 성지는 장주기 성인을 비롯한 순교자들의 탄생지이면서 동시에 성 앵베르 범(라우렌시오, 1796~1839) 주교와 민극가(스테파노, 1787~1840) 성인, 정화경(안드레아, 1808~1840) 성인, 손경서(안드레아, 1799~1839) 순교자 등의 자취도 아우른다.

범 라우렌시오 주교는 박해를 피해 이 지역으로 왔다가 체포돼 순교했다. 민극가 성인은 범 주교로부터 양간의 송교(현 화성군 서신면 송교리) 전답 경작권을 위임받아 교회 재정 확보를 위한 전답을 운영했다. 당시 이 장소가 지닌 중요성을 시사한다.

또 충청도 정산 출신 정화경은 신앙생활을 위해 양간으로 이사해 범 주교로부터 회장에 임명돼 신앙전파에 힘썼다. 손경서는 범 주교의 피신을 도왔다.

성지는 이런 역사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장주기 성인 출생지’, ‘교우촌 형성지’ 정도로만 여겨지다가 2006년 9월26일 성지 전담사제가 파견되면서 본격적인 성지개발이 추진됐다.

요당리성지 십자가의 길.

대성당과 소성당, 순교자 묘지, 기도의 광장, 묵주기도 길, 십자가의 길 등으로 구성된 성지는 아늑하다. 이숙자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의 ‘손’에 주목한 특별한 십자가의 길 조형물 등으로 조각 공원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성지는 그 가운데에서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순교 성인들의 뜨거운 열정과 신앙을 호흡하게 만든다. 장주기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대성당은 지난 2010년 봉헌됐다.

대형 십자가 아래 성 범 라우렌시오 주교, 성 장주기 등 성지에서 현양하는 순교자들의 묘소에서는 숙연해진다. 범 주교 묘비를 보면 방인사제 양성에 힘쓰며 김대건 성인을 그 첫 열매로 맺었던 파리 외방 전교회의 역할이, 장주기 성인과 민극가 성인 등 순교자 묘비 앞에서는 박해의 칼날을 피해 하느님을 알리고 교회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평신도들의 수고가 떠올려진다. 묘소는 가묘다.

양간 출신으로 여겨지는 장경언, 장치선, 장한여, 장요한 등 가족 순교자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성지의 특징이다. 이들은 장주기 성인의 친척들로 대부분 부모로부터 전수된 신앙을 짐작케 한다.

강버들 신부는 “순교자들 행적에서 여러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한때 배교하지만 이를 뉘우치고 의연하게 순교를 맞는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우리도 신앙을 거스르는 유혹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가족의 정까지 하느님 앞에 내어놓았던 순교자의 삶은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의 자리를 묵상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문의 031-353-9725 요당리성지 사무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