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유흥식 대주교 특별대담

정리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1-07-13 수정일 2021-07-13 발행일 2021-07-18 제 325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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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착한 사마리아인 닮은 사제’ 절실… 친교의 모범 돼야”
“교황 방북은 남북 화해 어려운 과제 풀어갈 가장 유력한 길”
■ 성직자성 장관 임명 의미
교황님께선 업무 능력보다 친교에 능한 장관 원하신 듯
아시아 대륙 중요성도 고려돼
■ 어떤 역할 수행할 계획인지
사제는 공동체 위해 봉사하고 모든 구성원들과 친구 돼야
제자들 발 씻겨 주신 예수님 모범 따르는 사제 되도록 할 것
■ 교황 방북 성사된다면
북미 관계의 큰 문제는 ‘불신’
신뢰의 표지인 교황 방북시 새로운 국면 나아갈 수 있어
■ 아시아 향한 보편교회 기대
교황, 아시아교회 잠재력 읽고 더욱 성장하길 바라고 있어
한국교회, 인적·물적 자원으로 적극 도울 자세 갖춰야 해
■ 마지막 바람
더 많은 한국 사제가 교황청서 보편교회 기여하도록 노력할 터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6월 11일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대주교에 임명했다.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청 장관에 한국의 주교가 임명된 것은 한국교회의 높아진 위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자부심과 긍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순교자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가 보편교회와 인류를 위해서 더 많은 몫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는 뜻깊은 시기에 맞게 된 경사를 함께 기뻐하며 7월 말 로마로 향한 여정을 앞둔 유흥식 대주교와의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 : 가톨릭신문사 사장 김문상 신부

◎일시 : 2021년 7월 6일

◎장소 : 대전교구청 교구장 집무실

유흥식 대주교는 “성직자성 장관으로서 모든 사제들이 정말 사제다운 사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사제가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문상 사장 신부(이하 김 신부) : 곧 로마로 향하실 분주한 일정 속에서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임명 발표 이후 지금까지 분주한 일정을 보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한 번 소감과 소회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흥식 대주교(이하 유 대주교) : 네, 감사합니다. 6월 11일, 제 임명 소식을 듣고서 많은 분들이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그러니 지난 4월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로마에서 제게 장관직을 처음 제안하셨을 때, 저는 얼마나 많이 놀랐겠습니까?

솔직하고 자세하게 제 마음과 임명 당시의 이야기를 담아 교구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 편지에는 제가 처음 장관직을 맡으라는 교황님 말씀을 듣고, 많은 성찰을 하면서 제 삶을 정리하고 나서 다시 로마로 가서 교황님께 혼신을 다해서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다짐을 말씀드리기까지 모든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장관직 임명이 발표된 후로 너무나 많은 분들이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로마로 향할 일정이 많이 남지 않아서 사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 신부 : 아시아의 주교를 교황청 장관으로, 특히 전 세계 사제들의 양성과 사목활동, 생활을 돕는 성직자성의 장관으로 발탁하신 것은 정말 파격적인 인사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파격적인 인사를 하신 교황님의 뜻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유 대주교 : 교황님께서 처음에 제게 말씀하시기를, 성직자성 장관의 임기가 곧 끝나기 때문에 후임에 어떤 분을 임명할까 고심하면서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황청에는 현재 아프리카 출신의 장관이 두 분 계시고, 아시아 출신 장관이 한 분 계신 데, 거대한 나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대륙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때 아시아의 주교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제 이름이 머리에 떠올랐을 때, 교황님께선 적임자를 찾았다는 생각에 “아!” 하고 안도감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교황님께서 “성직자성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교회가 쇄신되기 위해서는 사제들이 쇄신돼야 하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당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교황청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는 전 세계의 사제들과 신학생들을 위해서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명한 신학자도 아니고 교회와 세상에 대해서 박학하지도 않다”고 말씀드렸지요. 저는 다만 신자들과 친근하게 지내고, 신학교를 사랑하면서 좋은 사제들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저 소박하게 사제들과 다른 주교님들과 친교를 나누는데 조금 더 애를 쓸 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이시면서 “주교님 바로 그거예요. 그렇게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실무를 잘하는 좋은 차관과 좋은 차관보를 임명해줄 테니까 일은 그분들이 하시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는, 저는 그저 성직자성이 서로 더불어서, 함께 공동체를 이뤄 일하도록 도와주고, 많은 주교들과 추기경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사제들을 사랑하고 좋은 관계를 맺도록 이끌어주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잘하는 것보다는, 사랑과 친교에 능한, 그런 장관을 원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유흥식 대주교(오른쪽)와 가톨릭신문사 사장 김문상 신부가 7월 6일 대전교구청 교구장 집무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대담은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사진 박원희 기자

-김 신부 : 성직자성 장관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데 있어서 가장 마음에 두신 것이 무엇일까요?

▲유 대주교 :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성직자성이 해야 하는 일은 사제들이 정말 사제다운 모습을 갖추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겠지요. 사제직의 이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또 지금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교황님께선 당신의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약은 바로 형제애라고 하시면서, 형제애가 자라나는 미래 교회와 인류를 만들자고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교황님께선 그 형제애의 모습을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제시하셨습니다.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외면하고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업고 여관에 데리고 가 치료를 해 주고, 여관 주인에게는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일 지불하겠다며 그를 잘 돌봐 달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쓰러진 사람이 누구든 그의 민족, 국적, 종교를 가리지 않고, 그저 인간이기에 도움의 손길을 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형제애로써 옆에 있는 이들의 형제자매가 되어 인종, 국적, 지위나 종교를 따지지 않고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착한 사마리아인을 닮은 착한 사제가 오늘날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직자성 장관으로서 저는 모든 사제들이 정말 사제다운 사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사제가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김 신부 :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항상 강조하셨고, 대주교님께서 오늘도 여러 번 말씀하셨듯이 교회의 쇄신은 사제의 쇄신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주교님께서는 오늘날 세상과 교회 안에서 사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사제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유 대주교 : 본래 사제직의 본질은 하늘과 땅을 잇기 위해서 당신 자신을 봉헌하는 제사장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그분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는 사제의 삶은 최고의 친교의 모범이 돼야 합니다. 만남과 친교의 대가가 돼야 합니다.

사제는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사제는 공동체의 아들이며, 성체성사를 통해서 공동체의 중심인 아버지가 되고, 또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과 친구가 돼야 합니다. 사제 독신제는 사제가 한 가정을 포기하고 더 큰 가정을 꾸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이와 형제자매가 되는 가정을 꾸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제의 역할이 중요하고, 사제 쇄신없는 교회 쇄신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김 신부 :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북 관계에 있어서 그 전환점을 교황님의 방북이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주교님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을 통해 그런 기대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유 대주교 : 교황님의 방북은 중요하면서도 매우 미묘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의 상대인 북한 역시 이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와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1년이나 지났지만, 남한 안에서도 아직 이른바 ‘색깔론’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북문제가 화제가 되면 서로 갈라져서 대화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남북 분단은 분명히 우리가 가진 가장 무거운 십자가입니다. 같은 형제자매가 갈라져서 70년 동안 왕래도 없이 사는 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분단의 원인으로 주변 강대국의 책임도 있지만, 우리도 그만큼 더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교황 방북은 남북 화해의 어려운 과제를 풀어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길입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이지요.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저는 교황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금이 바로 적절한 때”라며 교황님의 방북을 요청했습니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신입니다. 서로를 믿을 수 없어요. 교황은 신뢰의 표지입니다. 교황님께서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질 수 있고, 북한 경제를 어렵게 하는 제재 조치들이 풀릴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는 물론이고 여건만 되면 남한의 투자가 이뤄지고 북한의 경제 상황은 개선될 수 있습니다. 경제 회복과 성장, 코로나19 대응 등에서, 북한에게 교황님의 방북은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방북의 길이 열리면 이를 계기로 남북이 소통하고 왕래함으로써 근본에서부터 남북 관계의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저는 교황님의 방북이 성사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유흥식 대주교(오른쪽)와 김문상 신부.

-김 신부 : 대주교님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은 아시아교회에 대한 희망과 기대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과 교황청, 보편교회의 아시아에 대한 기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유 대주교 : 교황님께서는 아시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시아교회가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아시아 대륙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많은 면에서 연약합니다. 중국교회도 아직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인도 역시 나라의 크기와 많은 인구에 비해 가톨릭교회의 교세가 약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아시아는 모든 면에서 점점 부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황님께서 아시아 대륙과 아시아교회를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보고 반성할 일은, 한국 사람들이 같은 아시아 대륙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 등을 생각해보면 정말 반성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 교회들에 비해서 눈에 띄는 성장을 거둬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 수가 많이 늘어났고, 교회의 인적 자원과 물질적 여력 등은 아시아 다른 나라 교회에 비해서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받는 교회였지만 이제는 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을 인력면에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돕고, 나아가 인터넷 등 앞선 기술력 등을 통해서도 적극 도울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하겠습니다.

-김 신부 : 대주교님께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가까이서 만나고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교황님의 면모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특별히 대주교님께서 보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어떤 분인가요?

▲유 대주교 : 교황님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고 친밀하게 지낼 수 있던 것은 큰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2014년 교황 방한이 큰 기회였지만, 그 후에도 해마다 개인알현이나 일반알현을 통해 교황님을 뵙는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2016년 수요 일반알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교황님께서 전용차를 타고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차에서 내려서 장애인들 자리로 와서 인사하고, 앞에 마련된 단상으로 올라오면 오른쪽에 추기경과 주교들이 앉는 자리가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추기경들을 지나서 40여 명의 주교들이 앉은 자리를 지나가시다가 저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인사를 나눠주셨습니다. 저로서는 큰 기쁨과 영광이었지요.

놀랍게 교황님께선 당신 앞에 있는 사람과 항상 눈높이를 맞춰 주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면 그분께서 오직 나만을 위해 거기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교황님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언제나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공중에 뜬 이론, 애매한 입장과 모호한 가르침이 아니고, 신앙생활도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이끄십니다.

교회의 쇄신을 이야기할 때에도 그저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뭘 할 것인지를 논하십니다. 한국교회의 백신 나눔 운동에 대해서 알려드렸을 때 매번 답장을 주셨는데, 이 답변에서도 교황님께선 “구체적인 연대와 구체적인 형제애는 저를 감동시킵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분은 구체적인 사랑을 하시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 신부 : 이제 7월 말이면 한국을 떠나 로마로 향하십니다. 로마에서 대주교님께서 맡으신 소임을 잘 수행하실 수 있도록 한국교회 모든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끝으로,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당부나 감사, 또는 그 외에 특별히 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유 대주교 : 무엇보다도 과분한 축하를 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모든 공은 제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장한 순교자들의 덕택입니다. 저는 그것을 잘 알고 있고 그 순교자들의 후손으로 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지난번에 교황님을 만났을 때 이런 당부를 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성직자성 장관이 나왔으니, 한국의 사제들이 좀 더 많이 세계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는 평신도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역동적이고 특별한 교회입니다. 저는 주교님께서 성직자성 장관직을 맡은 것이 바로 그러한 한국교회의 모습이 세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황청에 한국교회의 사람이 가 있을 때와 없을 때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제 제가 장관으로 교황청에 가 있을 테니, 앞으로 제 숙제 중 하나는 더 많은 사제들이 교황청에서 일함으로써 한국교회가 보편교회를 위해 더 많이 기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 신부 : 오랜 시간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가톨릭신문 독자들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정리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