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성가 소비녀회(하)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1-07-13 수정일 2021-07-14 발행일 2021-07-18 제 325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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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아픔 읽고 그 속에서 활동
생명·정의·평화 위해 투신
‘통합생태’ 위한 노력 경주

성가 소비녀회 수녀들이 하느님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종신서약을 하고 있다. 성가 소비녀회 제공

창립 이후 절대적인 가난에 대한 긴급한 요청에 응답해온 성가 소비녀회는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상대적인 가난과 정의 문제로 인식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시대적, 사회적 요청이 높아진 이주민과 북한이탈주민 사도직에 손을 내밀고 다문화 가정을 위한 공부방 개설, 가난한 지역 안으로 들어가 공동체 삶을 증거하는 등 현장성이 강화된 사도직을 수행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동참했으며, 북한돕기에 적극적으로 투신하기 시작했다. 새만금 갯벌, 4대강 사업,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 등 다양한 시대 현안을 마주하면서 개인과 공동체가 생명을 살리고 정의를 구현하는 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또한 연평도 평화지킴이, 제주 강정 평화지킴이로 파견돼 치열한 현장과 함께하기도 했고,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및 안산 지역민들과 함께 살며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원에도 나섰다.

21세기의 성가 소비녀회는 많은 도전과 변화 앞에 서 있다. 성가 소비녀회는 제17차 총회에서 ‘부서지고 상처 난 내 백성을 회복하여라’를 주제로 시대의 아픔을 읽고 이 아픔 속으로 어떻게 강생해야 할지 고민하고 기도했다. 그 결과 ‘통합생태적 삶으로 대전환한다’고 결의했다. 통합생태는 공동의 원천을 가지고 서로 연결돼있는 모든 생명, 모든 사물을 포괄하는 생태로서, 우주에 존재하는 어느 한 생명도 소외됨 없이 창조의 조화로운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활동이다. 이를 위해 개인의 회심, 자연보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사회·경제·정치 등 이 세계 모든 영역의 회복을 촉구한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땅의 회복과 생명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자연농법으로 농사짓기, 토종씨앗 지키기, 생태적 삶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 공동체를 꾸려 생명의 가치와 지속가능성, 하느님 창조보전에 투신하고 있다. 시흥, 양주, 배론, 용문 등에 생태공동체 터를 잡고 있다. 성가 소비녀회는 도시 안에서도 생태공동체의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모든 공동체 삶의 양식에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어느 특정 사도직을 생태사도직으로 떼어놓기보다 교육, 의료, 복지, 선교 등 각 영역에서 강생이라는 설립 정신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오늘날 확장된 통합생태론적 관점에서 구현해 가는 것이다.

기후 위기와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 한복판에서 급박하게 들려오는 온 우주의 울부짖음에 설립자의 마음으로 귀 기울이며 소비녀들은 새로운 강생을 시작하고 있다. 가난이 더 깊은 가난으로 몰려가고 소외됨이 더 큰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이 시대에 각자도생이 아닌 모두가 함께 생명을 회복시키는 길에 합류하도록 초대하는 새로운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성가 소비녀회는 이 세계의 모든 생명을 한 어버이의 한 가족으로 품고 살리는 우주적 성가정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연대의 그물망을 넓혀가고 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