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13)어농성지

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1-07-13 수정일 2021-07-13 발행일 2021-07-18 제 3254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주문모 신부 입국 도운 세 명의 밀사들 현양
복자 윤유일 비롯한 17위 현양
청소년들을 위한 성지로 선포
순교신심 보고 느끼도록 조성

어농성지에 있는 복자 윤유일 동상. 그는 교회 밀사로 북경을 세 차례나 오가며 조선에 사제 파견을 요청했다.

1794년 12월 14일 복음을 전하고자 중국인 주문모 신부(1752~1801)가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발을 들였다. 이는 1789년 교회 밀사로 선발돼 북경에서 구베아 주교를 만나 사제 파견을 간청하고, 한국인 최초로 견진성사를 받는 등 중국 베이징을 네 차례나 오간 윤유일(바오로)과 그의 동료 최인길(마티아), 지황(사바) 세 사람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그러나 밀고로 주 신부의 입국 사실이 관가에 알려졌다. 세 밀사는 현장에서 주 신부를 탈출시키고 체포됐다. 그들은 매질을 당하면서도 주 신부의 행방에 대해서 털어놓지 않았다. 이들은 혹독한 매질 끝에 하루 만에 숨을 거뒀다.

주문모 신부는 이후 6년간 강완숙(골롬바) 집을 거점삼아 사목 활동을 펼쳤다. 그의 노력에 조선 내 신자 수는 1만 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주 신부는 1801년 3월 더 이상 박해로 희생당하는 이들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자수했다. 이후 두 달 뒤 그는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어농성지 순교자 묘역에 있는 17위 복자들의 의묘와 예수성심상.

어농성지 순교자 묘역에 있는 복자 윤유오(야고보)의 묘. 묘역에 있는 유일한 진묘다.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3리에 위치한 어농성지(전담 박상호 신부)는 주문모 신부를 모셔온 세 사람의 밀사와 윤유일의 동생 윤유오(야고보)의 묘, 윤점혜(아가타), 강완숙(골롬바) 등 1795년 을묘박해와 1801년 신유박해 때 희생된 복자 17위를 모신 곳이다. 이 중 윤유오의 묘를 제외한 나머지는 실제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지지 않은 의묘다.

어농성지가 성지로 개발된 것은 1987년 윤유일 복자의 후손들이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에 순교자인 윤유오의 묘와 윤유일의 조부, 부친 등 파평 윤씨 일가의 선산이 있음을 교구에 밝히고 제공하면서부터다. 이후 교구는 이 선산을 성지로 개발해 1987년 9월 15일 당시 2대 교구장 고(故) 김남수 주교가 축복하고 성지로 선포했다. 그리고 2002년 8월 3대 교구장 최덕기 주교에 의해 ‘을묘, 신유박해 때 순교한 선조들을 기리고 현양하기 위한 기념성지’로 선포됐다.

성지는 교구 내 ‘청소년성지’로 알려져 있다. 이는 2007년 성지가 ‘청소년들을 위한 성지’로 선포된 것과 현양하는 17위 복자들 중 18세였던 심이기(바르바라), 26세 원경도(요한), 28세 지황(사바) 등 젊은 나이에 순교한 이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일 시기에 신앙을 지키고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이들의 순교는 현재 청소년·청년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어농성지 순교자 묘역 야외 제대에는 윤유일 복자가 순교직전 남긴 유언인 ‘천만 번 죽을지라도, 저 십자 형틀에 묶이신 분을 배반할 수 없소’가 명패로 쓰여 있다.

이를 위해 성지는 청소년들이 성지에 있는 다양한 곳을 다니며 복자들의 희생정신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됐다. 우선 성지 내 성당 오른쪽 아버지 상을 지나 길을 오르면 차꼬, 혁편, 장, 철색, 축 등의 형구가 전시돼 있어 순교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묵상할 수 있다. 성지 왼편으로 나오는 순교자 묘역 야외 제대에 걸린 명패에는 윤유일 복자가 순교 직전 남긴 유언인 ‘천만 번 죽을지라도, 저 십자 형틀에 묶이신 분을 배반할 수 없소’가 쓰여 있다. 이는 코로나19라는 시련으로 활동이 중단돼 쉽게 좌절하고, 신앙을 잊어가는 청소년·청년 및 우리들에게 반성의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제대에서 묘역 쪽으로 가면 윤유일 복자 동상과 주문모 신부의 동상이 있다. 청소년들은 두 분 동상을 보며 다시 한 번 순교신심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당 앞 십자가 동산에서 앞서 다녀간 이들이 쓴 방문 소감 등을 보며, 신앙에 새 활력을 얻어갈 수도 있다.

어농성지 성당에 모셔져 있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

성지는 현재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박상호 신부 주례로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모신 성당에서 매 미사마다 순례객들과 함께 200주년 탄생 기도문을 봉헌하고 있다. 교구 지정 순례지인 만큼 신자들은 이곳에서 전대사를 받을 수도 있다.

박 신부는 “성지는 성 김대건 신부님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신앙 불모지였던 조선에 신앙을 꽃피우고자 노력한 이들을 모신 장소”라면서 “김대건 신부님과 같은 신앙 선조들을 탄생시킨 시작점으로 그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신자들의 희생을 막고자 목숨을 내던진 주 신부를 비롯해,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쳤던 복자들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에게 신앙적 헌신과 희생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박 신부는 “현재 많은 분들이 가족 단위로 성지를 방문한다”며 “성지를 찾는 분들께 이곳에서 청소년을 위한 신앙 체험을 한 뒤, 인근에 있는 단내 성가정성지와 더불어 가족이 함께 신앙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순례를 해보면 어떨까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청년 대상으로 진행됐던 성지 내 프로그램들은 코로나19로 중단됐지만, 가족 단위 소규모 피정은 열려있다”며 “성지란 어려운 장소가 아니라 누구라도 방문하고 쉬어가고 기도할 수 있는 장소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의 031-636-4061 어농성지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