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자연 속에 숨겨진 찬란한 신앙 유산 박해 피해 숨어든 용소막 인근 교우촌 형성되며 경당 세워 1915년에 현 성당 모습 완공 감악산 남쪽에 있는 배론성지 ‘황사영 백서’ 작성된 토굴과 최양업 신부 묘도 볼 수 있어
감악산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경계를 이루는 해발 945m 높이의 산이다. 보통 감악산으로 불리지만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감악봉으로 돼 있다. 이웃한 치악산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하나로 온 가족과 함께 여유있게 오를 수 있어 등산객에게 인기 높은 산이다. 감악산 자락에는 용소막성당과 배론성지도 있어 등산과 함께 성지 순례를 할 수 있다. 감악산과 함께 용소막성지와 배론성지를 찾아가 보자.
■ 고즈넉한 운치의 용소막성당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산로 1857. 감악산 자락 끝에 자리 잡은 용소막성당은 풍수원성당과 원주성당(현 원동주교좌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성당이다. 고딕 양식 벽돌 건물로 서울 명동대성당을 꼭 빼어 닮은 용소막성당은 1915년 시잘레 신부가 완공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다. 마당에는 수령 150년이 훌쩍 넘은 느티나무 다섯 그루가 성당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어 고즈넉한 운치를 더한다. 용소막성당이 위치한 신림면(神林面)은 글자 그대로 신성한 숲으로, 북으로는 치악산, 동서로 백운산과 감악산에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생겨 수도권에서 두 시간 안팎이면 갈 수 있지만, 옛날엔 그야말로 두메산골이었다. 이 두메산골에 천주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천주교에 대한 박해 덕분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첩첩산중이던 용소막 인근에 흩어져 살았다. 이후 1893년부터 용소막으로 신자들이 이사를 왔고, 1898년 풍수원본당 전교회장으로 활발히 전교활동을 하던 최도철(바르나바)까지 이주해 오면서 교우촌이 형성됐다. 그는 1898년 대여섯 명의 교우들과 신부 방이 포함된 초가 열 칸의 아담한 경당을 지었고, 원주본당 관할의 용소막공소 초대 회장을 맡았다. 1904년 용소막은 본당으로 승격됐고, 교세가 커지자 3대 주임이던 시잘레 신부는 성당 신축에 나서 1915년 가을 현재의 성당을 완공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성당 또한 많은 수난을 겪었지만 다행히도 원형을 거의 보존할 수 있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6년에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됐다. 용소막성당 구내에는 본당 출신으로 공동번역 성서 발간에 큰 업적을 남기고 성모 영보 수녀회를 설립한 선종완(1915-1976) 신부의 동상과 유물관이 있다. 유물관에는 선 신부가 번역 작업을 위해 사용했던 세계 각국의 성경과 책상, 카메라 등의 유품이 전시돼 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개방하지 않고 있다. 성당 뒤편으로는 자그마한 성모 동산이 자리한다. 동산에 오르는 길에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순례와 함께 감악산 오르기
감악산은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의 거리가 짧고 경사도 완만해 산행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산행기점은 백련사다. 백련사에서 감악산 정상까지는 30여 분 걸린다. 하산할 대는 885봉, 요부골을 거쳐 비끼재로 내려가는 길과 재사동으로 내려가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비끼재를 따라 좀 더 내려오면 가나안농군학교 앞에 이르고 학산리 인근 국도로 나오게 된다. 학산리에서는 국도 건너편 구릉에 있는 용소막성당을 쉽게 찾을 수 있다.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