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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1-07-06 수정일 2021-07-06 발행일 2021-07-11 제 325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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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 르그레즈와 학장 신부에게 보낸 19통의 편지 모음집 제목입니다. 얼마 전 선종하신 고(故) 정진석 추기경님께서 라틴어 편지를 번역하셨습니다.

‘주추’는 ‘땅 위에 놓아 기둥을 받쳐 주는 건축재’로 종종 초석이나 주춧돌로도 부릅니다. 그 ‘주추’ 위에 ‘기둥’을 세운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문득 책 제목에서 밝힌 ‘주추’와 ‘기둥’은 누구일까 생각했습니다. 책 제목을 물끄러미 보다가 올해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이라는 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라는 건물로 보면 김대건 신부님이 ‘주추’이셨고 최양업 신부님이 ‘기둥’이셨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박해시대 교우촌에서 태어나고 신앙을 배우고 사제가 됐던 두 분. 1821년 같은 해에 태어났던 두 신부님이 이런 역할을 해 주셨다는 점이 신비롭기까지 했습니다.

마침 6월 29일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문득 전 세계 보편교회라는 건물로 보자면 베드로 사도는 ‘주추’이고 바오로 사도는 ‘기둥’이셨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도가 신앙의 출발 시기는 달랐으나 순교한 시기가 67년 무렵으로 비슷하다는 점도 신비로웠습니다.

한국교회의 ‘주추’와 ‘기둥’이신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이 같은 해에 탄생하셨고, 전 세계 보편교회의 ‘주추’와 ‘기둥’이신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가 비슷한 시기에 순교했다는 사실은 경이로움조차 느끼게 합니다.

결국 신앙이라는 건물이 튼튼해지고 잘 버티려면 ‘주추’와 ‘기둥’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족화해의 ‘주추’와 ‘기둥’ 역할을 우리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민족화해는 민족의 복음화라는 차원에서 북녘을 향한 것도 있고 우리 내부의 화해라는 차원도 포함돼 있습니다. 민족화해는 ‘북한선교’라고 하는 일방적이고 부분적인 개념과는 그 범위와 접근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의 복음화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6·25전쟁 이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북녘 땅에 있던 복음의 흔적을 찾고 유지시키며 믿음을 점차 복원하는 것이고, 우리 내부의 화해 차원에서 보자면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물은 땅이 패인 모양을 따라 흐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첫 시작을 잘해 놓으면 그 뒤에 따르는 물은 그 패인 모양을 따라 순조로이 흘러갈 것입니다. 남북 모두를 향한 화해의 길이 힘들지라도 우리가 ‘주추’가 되고 ‘기둥’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며 7월을 보냈으면 합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땅을 파느냐에 따라 흘러갈 물의 모양도 그에 맞춰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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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