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어떻게 그런 일이 / 함상혁 신부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
입력일 2021-07-06 수정일 2021-07-06 발행일 2021-07-11 제 325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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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알고 지내던 교우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가톨릭신문사 모 기자님이 저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에 본당 비대면 신앙학교 취재를 오신 적이 있는 기자분이라 올해는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작년에 취재를 왔을 때에도 인터뷰하는 것이 어려워 잠깐 인사만 하고 피신(?)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짧게 대답만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가톨릭신문에 원고를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복음의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알림을 받은 성모님의 대답,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거절을 하려고 했으나 전화한 기자님 입장을 생각하여 ‘그래,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신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시면 되는데 총 10회 연재하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이 말씀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많은 사람이 보는 신문에 글을 쓰는 것은 학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훌륭한 분이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제게는 ‘내가 신문에 글을 쓴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생각은 겸손이 아니라 어찌 보면 ‘순명하지 못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모님도 저와 조금은, 아주 조금은 비슷한 마음이 아니셨을까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예고를 믿으라니 마음이 참 복잡했을 것입니다.

2005년도에 사제품을 받은 저는 올해 사제가 된 지 16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었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바로 순명인 것 같습니다. 어떠한 조건, 어떠한 처지에서도 늘 하느님 뜻에 순명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가장 크게 불순명(?)의 죄를 저지르는 순간은 인사이동 때입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는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본당 혹은 기관 어떤 곳으로 가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하느님 사랑을 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힘든 일이 생기거나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불평하고 불만을 갖고 살아온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것에 감사하고 순명하며 살고 계십니까? “하느님,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하고 원망한 적은 없으십니까? 그럴 때 나에게 생기는 모든 일이 하느님 사랑의 손길이라고 믿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부터 ‘어떻게 그런 일이’가 아니라, ‘이렇게 좋은 일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함께 노력해 봅시다.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