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91) 좋은 교우 옆 좋은 사람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6-29 수정일 2021-06-29 발행일 2021-07-04 제 3252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외양간경당 축복식 후, 경당 주변엔 소소하게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황토 흙과의 전쟁입니다. 고창의 황토는 농사에 좋지만 생활에는 은근히 불편함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경당 주변은 누런 흙으로 된 잔디밭이라, 잔디가 충분히 올라와 땅을 굳게 다져주기 전까진 비가 올 때마다 경당 주변이 황토 뻘(개흙)이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오후 3시 순례 미사에 오신 분들이 황토 뻘을 밟은 채로 경당에 들어오시면, 자연히 경당 내부는 흙 천지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경당에 들어올 때 단지 신발만 벗고 들어오게 해뒀지만,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한 가지 고안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공소에서 올 봄까지 화목 보일러용으로 쓰던 통나무가 남았는데, 그 나무를 일정하게 자른 후, 성지로 가지고 가서 비가 올 때마다 황토 뻘이 되는 곳에 자른 나무를 깔아 놓는 것입니다.

마침 고창본당 교우분 중 비닐하우스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분이 계셔서, 그분께 ‘언제 시간 있을 때 나무 좀 잘라 달라’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며칠 뒤, 그 형제님께선 오전에 일이 없다면서 어떤 분이랑 함께 공소에 오셔서 엔진 톱으로 나무 자르는 일을 해 주셨습니다. 함께 오신 분은 신자는 아니지만 조용하면서도 우직한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분은 말없이 일을 하는데, 오랜 기간 함께 일을 하신 분들이라 그런지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어느덧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통나무를 다 잘라 주셨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인근 중국음식점에서 시킨 짬뽕과 콩국수, 볶음밥을 공소 마당 옆 컨테이너로 된 사랑방에서 먹었습니다. 두 분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두 분은 기쁘게 식사를 하셨습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그분들께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바쁘고 귀한 시간을 내 주셔서 이렇게 좋은 일을 해 주셔서. 암튼 사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자 교우분이 손사래를 치며, “신부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이 형님에게 여기 일 좀 도와주러 가자고 하니, 바로 따라 나서 주었어요. 그리고 저뿐 아니라 이 형님의 하루 일당이 비싸요. 하하하. 그런데 형님이 먼저 말씀하셨어요. 이런 데 오면 일당 받는 것 아니라고. 형님이 신자인 저보다 훨씬 나은 분이시죠.”

말씀만 들어도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형님이라는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저보다 훨씬 훌륭하세요.” 그러자 그분은, “신부님, 세상 사는 방식에 이런 노래 가사가 있잖아요.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우리 인생도, 뭐 연필로 쓰고 살면 좋잖아요. 좋은 일 있으면 좋고, 안 좋은 일이나 기억이 있으면 지우개로 지우고. 뭐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세상 그렇게 복잡하게 안 살아도 잘 살 수 있어요.”

너무나 인상도 좋고 마음 씀씀이도 좋은 ‘형님’이라는 분에게 그날 나는 천주교 신자가 되시라 권유 한마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신자 이상으로 세상을 겸손하게, 성실하게, 봉사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냥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좋은 교우, 다시 말해서 신앙인다운 교우분을 만나는 건 쉬운 일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은 교우분들은 자신이 결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바로 진짜 좋은 교우분들 옆에는 신앙을 초월해서 좋은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겁니다. 좋은 교우의 모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기만 해도 좋으니 말입니다. 좋은 교우, 신앙인다운 교우가 된다는 것…, 쉽고도 어려운 일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