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희년 맞은 성 김대건 신부 탄생지 솔뫼성지에 가다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1-06-29 수정일 2021-06-30 발행일 2021-07-04 제 3252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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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주교인이오” 고백하던 성인의 기개 고스란히
순교에 이르는 고통 속에도 흔들림 없이 신앙 증거했던 성인의 얼 닮은 ‘소나무 산’
신심 깊은 집안에서 태어나 믿음의 뿌리 내린 성인 생가 교황 방한으로 주목 받기도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선 당시 서한·초상화 볼 수 있어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한국교회 순교자 79위가 시복됐다. 한국교회는 해마다 이날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기까지 걸었던 길을 기억하면서 성대한 신심 미사를 봉헌한다.

올해는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교회 신자들은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를 주제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2020년 11월 29일~2021년 11월 27일)을 보내고 있다. 희년은 “나는 천주교인이오”라고 답했던 성 김대건 신부처럼 신자들이 천주교 신자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성 김대건 신부 고향인 솔뫼성지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느끼고 희년을 기쁘게 사는 해답을 찾아보았다.

■ 솔뫼성지 소나무, 순교정신 상징하는 듯

충남 당진 솔뫼성지로 가는 길에는 성지 인근에서부터 도로 안내 표지에 ‘김대건 신부 탄생의 길’, ‘프란치스코 교황로’라는 도로명이 적혀 있었다. 성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성 김대건 신부가 종교와 지역을 초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듯했다. ‘김대건 신부 탄생의 길’과 ‘프란치스코 교황로’는 당진시가 대전교구와 협의해 만든 명예 도로명이다. 교황은 2014년 8월 15일 솔뫼성지를 찾아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 앉아 기도했다.

교황은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개막을 맞아 한국교회에 보낸 강복 메시지에서도 김대건 신부를 기억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형제적 애덕과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눈부시게 증언함으로써 마침내 영웅적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고 말했다. 교황이 말한 성 김대건 신부의 형제적 애덕과 사랑의 삶, 영웅적 순교의 모습은 솔뫼성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솔뫼성지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소나무 산’이라는 성지 이름처럼 키 큰 소나무들의 푸르른 모습이다. 소나무에 깃든 새들의 노래 소리는 성지의 고요함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솔뫼’는 성 김대건 신부가 태어나기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지명이지만 성 김대건 신부는 물론 부친 성 김제준(이냐시오), 증조부 복자 김진후(비오) 등 집안에서 여러 순교자가 대를 이어 나왔다는 사실에서 소나무가 갖는 상징성이 다시금 떠올랐다. 솔뫼성지 역사를 지켜 오고 있는 소나무들은 줄기는 비록 굽어 있지만 그 푸르름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다. 성 김대건 신부가 순교에 이르기까지 육체적으로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나는 천주교인이오”라고 말하며 증거했던, 추호도 흔들림 없는 신앙을 소나무들이 오늘을 사는 신자들에게 보여 주는 듯하다.

■ 아레나, 생가에서 김대건 신부 자취 발견

1977년 12월 23일 세워진 ‘김대건 신부 상’. 시성되기 전에 세워져 ‘수선 탁덕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라는 호칭으로 기록했다.

솔뫼성지 입구 옆에는 ‘솔뫼성지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이라고 적힌 커다란 안내석이 보이고 받침돌에는 성 김대건 신부가 순교 직전에 했던 말인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가 새겨져 있다. 이 구절을 읽고 성지 안으로 들어가려면 못 박힌 예수님의 발 조각상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는 성경말씀과 마주하게 된다. 성 김대건 신부가 보여준 순교정신이 온전히 전달돼 숙연한 마음을 갖고 성지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성지 입구를 통과하면 반원형의 ‘아레나’(Arena)가 있고, 그 둘레에 12사도 상이 서 있다. 아레나는 야외 미사나 공연 장소로 쓰이기도 하는데, 솔뫼성지에서 아레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모르고 지나치기도 한다. ‘아레나’는 본래 그리스·로마 시대에 검투사들이 싸우던 ‘피의 언덕’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솔뫼성지에서 사목실습을 하며 순례자 안내를 맡고 있는 황범기(이냐시오·대전가톨릭대학교) 신학생은 “12사도가 고난을 당하면서도 세계에 예수님의 뜻을 퍼뜨렸듯이 김대건 신부님 역시 순교하기까지 신앙을 실천했음을 12사도 상을 통해 배우고 신자들도 배운 대로 따르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 방문 당시 기도했던 성 김대건 신부 생가. 앞마당에는 교황이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이 설치돼 있다.

‘아레나’를 지나면 성 김대건 신부 생가가 나온다. 이곳은 2014년 교황이 방문해 기도하면서 솔뫼성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됐다. 생가 앞마당에는 교황이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작품이 설치돼 있어 7년 전 교황 방문 당시의 감동이 전해진다. 솔뫼성지를 찾은 순례자들이 교황 조각상 옆에 서서 기도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성 김대건 신부 생가는 본래 충청남도 기념물 제146호였다가 교황 방한을 앞두고 지질조사와 고증을 거쳐 2014년 국가 사적지 제529호로 승격됐다. 생가 안에는 쌀뒤주가 놓여 있고 겨울철 땔감 나무도 생가 옆에 쌓여 있어 성 김대건 신부와 그 선조들의 살아생전 숨결이 지금도 감도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생가를 지나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 ‘김대건 신부 상’이 나타난다. 1977년 12월 23일 세워진 이 동상 받침돌에는 전 대전교구장 고(故) 황민성 주교 글씨로 성 김대건 신부 출생과 순교 사실이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수선 탁덕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라는 호칭이다. ‘수선 탁덕’(首先 鐸德)은 ‘가장 먼저 된 신부’라는 의미다. 과거에는 신부를 ‘덕을 행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탁덕’이라 부르기도 했다. ‘김대건 신부 상’ 경내 고즈넉한 곳에는 비석 두 기가 서 있다. 하나는 김대건 신부 1984년 시성을 기념하는 비이고 다른 하나는 순교 100주년을 기억하며 1946년에 합덕지방 교우들이 세운 것이다. 성 김대건 신부를 공경하는 신심이 솔뫼성지 일대와 한국교회 전체에 뿌리 깊게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느낄 수 있다.

■ 김대건 신부 희년 정신은 ‘나눔’

솔뫼성지 안내석. 아래에는 성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기 직전 했던 말이 새겨져 있다.

솔뫼성지 십자가의 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 안에 조성돼 걷는 이가 시대의 간격을 뛰어넘어 순교 선조들과 동행하는 체험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성 김대건 신부의 서한과 시기별로 제작된 초상화 작품 등을 볼 수 있는 ‘솔뫼 김대건 신부 기념관’과 교황의 솔뫼성지 방문 3주년을 맞아 조성한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의 집’도 솔뫼성지 순례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솔뫼성지 전담 이용호 신부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사는 한국교회 신자들이 참으로 기쁘게 희년을 보내는지 생각해 보자”며 “김대건 신부님이 전염병 치유에 헌신했고 평등과 인권 존중 정신을 강조한 것은 결국은 ‘나눔’ 정신”이라고 말했다. 또한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진정 기쁘게 사는 방법을 김대건 신부님은 알려 주고 있다”고 밝혔다.

솔뫼성지 곳곳에 살아 숨쉬는 성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리면서 ‘나는 천주교인’이라고 스스로에게 답할 수 있는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