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죄인들을 구하는 복음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1-06-29 수정일 2021-06-29 발행일 2021-07-04 제 325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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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체는 ‘성인들에게 내려지는 상급’이 아니라 ‘죄인들의 빵’이라고 설명하셨다. 이날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삼종기도에서 교황님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던 ‘그 밤’에 성체성사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시는 게 아니라, 그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시고, 그를 위해 값을 치르십니다.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와 똑같이 행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아시고, 우리가 죄인임을 아시고, 우리가 많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아시지만, 당신의 생명을 우리의 생명에 일치시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2021년 6월 6일 바티칸뉴스 참조)

실제로 복음서가 묘사하는 예수님은 ‘죄인’들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라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비난에 대해서도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고 대답하신다.(루카 5,30-31) 더 나아가 아버지 하느님의 자비를 믿었던 예수님은 당시 유다인들 마음 안에 있던 편협한 선악과 환대의 기준에도 문제를 제기하신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질문하는 율법교사에게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어주신 것이다.(루카 10,29-37)

조건 없는 선행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이 이야기는 사마리아 사람은 착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중들의 편견에 도전하고 있다. 오히려 비유에 등장하는 사제와 레위인은 정결례의 규정을 어길까 봐 두려워서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외면했다. 살생, 출산, 성적인 배출, 피부병 등과 함께 주검과의 접촉도 사람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께 대한 예배를 핑계로 이웃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죄인과 병자의 ‘불결함’을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예수님은 죄인들, 그리고 사회적 약자였던 병자들을 기꺼이 만나셨다. 나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럽힌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한 연민이 그들을 치유하고 구원했다.

참혹한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70년 가까운 세월을 휴전 상태로 있는 이 땅은 증오와 두려움이라는 죄와 병을 앓고 있다. 병든 이를 염려하는 의사의 마음으로 한반도를 바라보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함께 기도하자. 한국천주교회가 ‘저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걱정과 반대를 넘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모두를 거룩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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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